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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의 입장을 모른 채 부딪히기만 하면 어떻게 될까요. 영화 '남편들'을 보는 내내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전혀 다른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 한 공간에 엮이면서 생기는 갈등과 그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이, 제가 직장 초반에 겪었던 협업의 어려움과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직장갈등, 누가 틀렸기보다 서로 다른 기준에서 시작됩니다
영화 '남편들'에서 흥미롭게 느껴졌던 부분은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들이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전직 조폭 보스 김용강, 마약 유통 조직을 이끄는 마도준, 마약반 형사 황충식은 각자 다른 목적과 기준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가족과 조직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고, 누군가는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들은 같은 상황을 바라보면서도 서로 다른 판단을 내립니다. 결국 갈등이 커지는 이유는 한쪽이 무조건 나빠서가 아니라, 상대가 어떤 사정과 목적을 가지고 있는지 제대로 알지 못한 채 자신의 기준만 앞세우기 때문입니다.
이런 모습은 제가 직장생활 초반에 겪었던 상황과도 닮아 있었습니다. 당시 다른 부서와 함께 하나의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저는 가능한 한 빠르게 결과를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정이 정해져 있었고, 해야 할 업무도 많았기 때문에 일단 실행한 뒤 부족한 부분을 보완하는 것이 효율적이라고 판단했습니다. 반면 상대 부서는 결재 절차와 자료의 정확성을 우선했습니다. 작은 오류라도 발생하면 이후 과정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니, 시간을 들여 여러 차례 검토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상대 부서의 방식이 답답하게 느껴졌습니다. 자료 하나를 확인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렸고, 회의를 할 때마다 이미 논의한 내용을 다시 확인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상대 부서가 지나치게 보수적이고 느리다고 판단했습니다. 반대로 상대 부서에서는 제가 절차를 무시하고 일을 성급하게 처리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서로 같은 목표를 향해 일하고 있었지만, 업무 속도와 정확성 중 무엇을 더 중요하게 보는지가 달랐기 때문에 회의가 반복될수록 감정까지 상하기 시작했습니다.
돌이켜보면 당시의 직장갈등은 업무 능력의 차이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서로의 역할과 책임이 달랐기 때문에 업무를 바라보는 기준도 달랐던 것입니다. 저는 결과물을 빠르게 완성하는 것이 중요했지만, 상대 부서는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져야 하는 부분까지 고려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상대의 행동을 상황이나 직무 특성으로 이해하지 않고, 단순히 일하는 방식이 느리다고 판단했습니다.
심리학에서는 상대의 행동을 주변 상황보다 개인의 성격이나 태도 탓으로 돌리는 경향을 귀인 오류라고 설명합니다. 예를 들어 동료가 답변을 늦게 보내면 업무가 많거나 확인해야 할 내용이 있다고 생각하기보다, 책임감이 부족하거나 협조할 의지가 없다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저 역시 상대 부서가 왜 신중하게 검토하는지 물어보지 않은 채, 비효율적인 조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갈등이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마감일이 가까워진 뒤였습니다. 더 이상 서로의 방식을 비판하고 있을 여유가 없었기 때문에 한 회의에서 “현재 가장 우선해서 확인해야 하는 부분이 무엇인지”를 먼저 물었습니다. 상대 부서는 반드시 검토해야 하는 항목과 나중에 보완해도 되는 항목을 구분해서 설명해 주었습니다. 저도 당장 실행해야 하는 업무와 일정상 조정 가능한 부분을 나누어 공유했습니다. 서로의 기준을 알게 되자 그동안 풀리지 않던 문제가 생각보다 빠르게 정리되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직장갈등은 누가 옳고 그른지를 가리는 것만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중요한 것은 상대가 왜 그런 판단을 했는지 알아보는 것입니다. 영화 속 인물들도 각자의 입장만 고집할 때는 충돌하지만, 공통의 목표가 생기면서 서로의 행동을 조금씩 이해하기 시작합니다. 직장에서도 갈등이 발생했을 때 상대를 바꾸려고 하기보다, 먼저 서로의 기준과 책임 범위를 확인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같은 목적을 가지고 있어도 과정과 우선순위는 얼마든지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통,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제대로 묻는 데서 달라집니다
영화 '남편들' 속 인물들은 서로 많은 말을 주고받지만, 그 말이 항상 이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각자가 자신의 목적을 숨기거나 상대의 의도를 의심하면서 대화하기 때문에, 같은 말을 듣고도 전혀 다른 의미로 받아들입니다. 겉으로는 대화가 계속되고 있지만 실제로는 자신이 하고 싶은 말만 반복하고 있는 셈입니다. 영화 속 갈등이 점점 커지는 과정은 직장 소통이 단순히 말을 주고받는 행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저도 입사 초반에는 업무 내용을 자세하게 전달하면 소통을 잘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메신저와 이메일에 필요한 정보를 길게 적었고, 회의에서도 제 의견을 빠짐없이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제가 전달한 내용이 예상과 다르게 이해되거나, 상대가 중요한 부분을 놓치는 일이 반복되었습니다. 처음에는 상대가 제 말을 제대로 읽지 않았거나 집중하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다시 살펴보니 문제는 상대에게만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상대가 어떤 정보를 필요로 하는지 확인하지 않은 채 제가 알고 있는 내용을 한꺼번에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한 번은 다른 부서에 자료 수정을 요청하면서 변경해야 할 내용을 길게 정리해 보낸 적이 있습니다. 제 입장에서는 최대한 자세하게 설명했다고 생각했지만, 수정된 결과물은 제가 원했던 방향과 달랐습니다. 저는 답답한 마음에 다시 수정 요청을 했고, 상대도 반복되는 요청에 부담을 느끼는 분위기였습니다. 이후 직접 통화를 해보니 상대는 제가 보낸 메시지에서 어떤 항목이 가장 중요한지 구분하기 어려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모든 내용을 중요하다고 생각했지만, 상대에게는 우선순위가 보이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때부터 소통 방식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먼저 요청의 목적을 한 문장으로 설명하고, 반드시 수정해야 하는 내용과 참고만 하면 되는 내용을 구분했습니다. 완료 기한도 단순히 날짜만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왜 그 날짜까지 필요한지를 함께 설명했습니다. 상대가 이해한 내용이 맞는지 확인하는 과정도 추가했습니다. 이렇게 하자 수정 횟수가 줄었고, 서로 불필요하게 감정을 소모하는 일도 눈에 띄게 줄었습니다.
직장 소통에서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많이 설명했는지가 아니라, 상대가 업무를 진행할 수 있을 만큼 명확하게 이해했는지입니다. 같은 단어도 부서와 직무에 따라 다르게 해석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빠르게 확인해 주세요”라는 말도 누군가에게는 한 시간 이내를 의미하지만, 다른 사람에게는 오늘 안에 처리하면 되는 업무로 받아들여질 수 있습니다. “간단하게 정리해 주세요”라는 표현 역시 분량과 형식이 구체적이지 않으면 사람마다 전혀 다른 결과물을 만들게 됩니다.
저는 이후 중요한 업무를 요청할 때 목적, 기한, 결과물의 형태를 구체적으로 전달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또한 상대의 말이 끝나기 전에 답변을 준비하는 습관도 줄이려고 했습니다. 이전에는 상대가 말하는 동안 어떻게 반박할지를 먼저 생각했다면, 지금은 상대가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무엇인지 파악하려고 합니다. 상대의 말을 다시 짧게 정리해 확인하는 것도 도움이 되었습니다. “말씀하신 내용은 이 부분을 먼저 수정한 뒤 확인을 받자는 의미인가요?”라고 질문하면 서로 다르게 이해한 부분을 바로 찾을 수 있었습니다.
영화에서 인물들이 힘을 합치게 되는 순간도 상대를 완전히 믿게 되었기 때문이라기보다, 당장 해결해야 할 공통의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같은 목표가 분명해지자 그동안 통하지 않던 말들이 조금씩 통하기 시작합니다. 직장에서도 소통이 막힐 때는 누가 말을 잘못했는지 따지기 전에 공동의 목표부터 다시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왜 이 일을 하는지, 현재 가장 중요한 결과가 무엇인지가 분명해지면 각자의 주장도 조정하기 쉬워집니다.
좋은 직장 소통은 말을 유창하게 하는 능력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필요한 질문을 던지고, 상대가 이해한 내용을 확인하며, 서로 다른 기준을 조율하는 과정이 포함됩니다. 저 역시 처음에는 제 의견을 명확하게 주장하는 사람이 소통을 잘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일수록 소통을 잘하는 사람은 자신의 말을 많이 하는 사람이 아니라, 상대의 말에서 필요한 정보를 찾아내고 서로의 차이를 정리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신뢰, 위기에서 보여준 작은 행동으로 쌓입니다
영화 '남편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부분 중 하나는 서로를 경계하던 인물들이 위기 상황에서 각자의 능력을 활용하기 시작하는 장면입니다. 평소였다면 절대 함께 움직이지 않았을 사람들이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역할을 나누고, 상대에게 중요한 일을 맡깁니다. 수의사 민석이 총상을 입은 마도준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전문성을 발휘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상황은 예상과 달랐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 끝까지 책임지려는 태도가 드러났기 때문입니다.
직장 신뢰 역시 상대가 완벽해서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업무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라도 약속을 자주 바꾸거나 문제가 생겼을 때 책임을 피한다면 함께 일하기 어렵습니다. 반대로 모든 업무에 능숙하지 않더라도 자신이 맡은 일을 끝까지 확인하고, 실수가 생겼을 때 솔직하게 공유하는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신뢰가 생깁니다. 결국 직장에서 믿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평가는 말이나 경력보다 반복되는 행동을 통해 만들어집니다.
저에게도 신뢰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 경험이 있었습니다. 중요한 보고 자료를 준비하던 중 제가 담당한 수치에서 오류를 발견한 적이 있습니다. 보고 일정이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었고, 이미 여러 부서에 자료가 공유된 뒤였습니다. 순간적으로는 오류를 조용히 수정하고 넘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실수를 알리면 업무를 제대로 하지 못한 사람으로 보일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오류가 이후 보고 과정에서 발견되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판단해 담당자에게 바로 상황을 설명했습니다.
처음에는 분위기가 무거웠지만, 어떤 부분에서 오류가 발생했고 수정된 수치가 무엇인지 정리해 전달했습니다. 이후 같은 문제가 반복되지 않도록 검토 과정도 다시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실수를 인정한 것이 부담스러웠지만, 오히려 그 일을 계기로 중요한 수치를 한 번 더 확인해 달라는 요청을 받게 되었습니다. 실수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숨기지 않고 해결하려 했던 태도를 좋게 봐준 것이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직장 신뢰는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실수하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실수를 처리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릅니다.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는 사람도 있고, 문제가 커질 때까지 알리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반면 빠르게 상황을 공유하고 해결책을 함께 제시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직장에서는 후자의 태도가 장기적으로 더 큰 신뢰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팀 안에서 자신의 의견이나 실수를 편하게 말할 수 있는 분위기도 중요합니다. 구성원이 문제를 발견했는데도 비난받을까 봐 숨기게 되면 작은 오류가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반대로 부족한 부분을 솔직하게 말해도 해결을 위한 대화가 가능하다는 확신이 있으면, 문제를 초기에 발견하고 대응할 수 있습니다. 이런 분위기를 심리적 안전감이라고 부릅니다. 이는 무조건 서로를 감싸주거나 실수를 가볍게 넘긴다는 뜻이 아닙니다. 잘못을 정확하게 확인하되, 사람을 공격하기보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 집중하는 태도에 가깝습니다.
저도 동료와 함께 일할 때 상대가 실수를 말하면 먼저 원인을 따지기보다 현재 어떤 도움이 필요한지 물으려고 합니다. 물론 항상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일정이 촉박하거나 업무가 몰리면 순간적으로 짜증이 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실수했을 때 누군가 해결책부터 함께 찾아주었던 경험을 떠올리면, 신뢰는 한쪽의 노력만으로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됩니다.
영화 속 인물들도 처음부터 서로를 믿었던 것은 아닙니다. 함께 위험한 상황을 통과하면서 상대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직접 확인했고, 그 행동이 다음 선택의 근거가 되었습니다. 직장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회의에서 좋은 말을 많이 하는 것보다 약속한 기한을 지키고,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책임을 피하지 않으며, 동료가 도움이 필요할 때 자신의 역할을 다하는 행동이 더 오래 기억됩니다.
영화 '남편들'을 단순한 액션 코미디로만 보기 어려웠던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서로 다른 인물들이 충돌하고 협력하는 과정에는 현실의 직장생활과 닮은 부분이 많았습니다. 직장갈등은 서로 다른 기준에서 시작되고, 직장 소통은 그 기준을 확인하는 과정이며, 직장 신뢰는 조율한 내용을 실제 행동으로 지키면서 만들어집니다. 저 역시 직장생활을 하며 업무 능력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사람을 대하는 태도라는 점을 배웠습니다. 함께 일하고 싶은 사람이 된다는 것은 모든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아니라, 문제가 생겼을 때 믿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