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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도 없이 14년을 감옥에서 보낸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도 민주주의와 법치의 상징이라 불리는 미국에서 벌어진 일입니다. 영화 모리타니안을 보고 나서 저는 한동안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불편한 질문 하나가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거든요. 의심만으로 사람을 가두는 일, 우리 주변에서도 벌어지고 있지 않냐고.

배경: 9·11 테러 이후 공포가 지배한 미국과 관타나모 수용소
영화 <모리타니안>의 배경을 이해하려면 먼저 2001년 9월 11일로 돌아가야 합니다. 이날 테러범들이 납치한 여객기가 뉴욕 세계무역센터와 미국 국방부 청사에 충돌했고, 또 다른 항공기는 펜실베이니아에 추락했습니다. 미국 국립기록관리청에 따르면 이 테러로 희생된 사람은 2,977명에 달합니다. 미국 본토가 공격받았다는 충격과 수많은 민간인을 잃은 슬픔은 사회 전체를 극심한 공포와 분노에 빠뜨렸습니다(출처: 미국 국립기록관리청).
미국 정부는 곧바로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전 세계에서 알카에다와 관련됐다고 의심되는 사람들을 추적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서아프리카 모리타니 출신의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도 수사 대상이 됩니다. 그는 젊은 시절 아프가니스탄에서 알카에다 관련 훈련을 받은 이력이 있었고, 알카에다와 연관된 것으로 의심받는 인물들과 연락한 기록도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가 아무런 의심을 받을 이유가 없었는데 단 한 통의 전화 때문에 체포됐다고만 설명하면 실제 사건을 지나치게 단순화하게 됩니다.
그러나 의심할 만한 과거가 있었다는 것과 9·11 테러에 가담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모하메두는 자신이 1990년대 초반 알카에다와의 관계를 끊었으며, 미국을 공격하는 일에도 참여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미국 정부 역시 그를 9·11 테러와 직접 연결할 수 있는 신뢰할 만한 증거를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그는 2001년 11월 모리타니에서 조사를 받으러 오라는 요청에 응한 뒤 집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모하메두는 미국으로 곧바로 이송된 것도 아니었습니다. 먼저 요르단으로 보내져 약 8개월 동안 구금과 심문을 받았고, 이후 아프가니스탄을 거쳐 2002년 쿠바의 관타나모 수용소로 이송됐습니다. 정식 형사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적도 없었지만, 그는 그곳에서 2016년까지 생활했습니다. 미국시민자유연맹은 그가 총 14년이 넘는 기간 동안 구금된 뒤 2016년 10월 모리타니로 돌아갔다고 설명합니다(출처: 미국시민자유연맹).
관타나모 수용소는 쿠바 영토 안에 있지만 미국이 장기 임차해 관리하는 해군기지에 설치됐습니다. 당시 미국 정부는 이곳에 수감된 외국인들이 미국 본토의 일반 법원에 곧바로 접근하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그 결과 관타나모는 전쟁포로 수용소와 형사 구금시설의 성격이 뒤섞인 법적 회색지대가 됐습니다. 수감자들은 일반적인 형사재판에서 보장되는 권리를 충분히 누리지 못한 채 장기간 구금됐습니다.
이 배경에서 중요한 개념이 인신보호 영장, 즉 ‘하비어스 코퍼스(Habeas Corpus)’입니다. 이는 국가가 사람의 신체를 구금했을 때 법원에 그 사람을 출석시키고, 구금에 합법적인 근거가 있는지 심사받도록 하는 제도입니다. 쉽게 말하면 정부가 아무런 설명 없이 사람을 붙잡아 두지 못하도록 막는 법적 안전장치입니다. 관타나모 수감자들의 재판 청구권을 둘러싼 논쟁이 이어졌고, 미국 연방대법원은 2004년과 2008년의 주요 판결을 통해 수감자들이 연방법원에서 구금의 적법성을 다툴 수 있다는 방향을 분명히 했습니다.
영화 속 군 검찰관 스튜어트 카우치는 처음에는 모하메두를 기소하기 위해 사건을 검토합니다. 그는 9·11 테러로 가까운 동료를 잃은 인물이기 때문에 모하메두에게 우호적일 이유가 없습니다. 하지만 자료를 살펴보면서 정부가 확보한 핵심 진술이 강압적인 심문 과정에서 만들어졌으며, 변호인에게 제공돼야 할 자료까지 제대로 공개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발견합니다. 그는 개인적인 분노와 법률가로서의 의무 사이에서 갈등한 끝에 기소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합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영화의 배경이 단순히 미국의 과거사로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조직이나 사회가 큰 피해를 입으면 사람들은 그 원인을 빨리 찾아내고 싶어 합니다. 불안한 상태를 오래 견디는 것보다 책임질 사람을 정하는 편이 심리적으로 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결론을 먼저 정해 놓고 그에 맞는 증거만 찾기 시작하면 수사는 진실을 밝히는 과정이 아니라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는 작업이 될 수 있습니다.
9·11 이후 미국이 느낀 분노와 공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테러 가능성을 조사하는 것도 국가가 해야 할 일입니다. 하지만 바로 그런 위기 상황일수록 법적 절차가 더 중요합니다. 평온할 때 누구에게나 권리를 보장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사회 전체가 특정 인물을 미워하고 처벌을 요구할 때도 같은 원칙을 적용할 수 있는지가 민주주의와 법의 진짜 수준을 보여줍니다. <모리타니안>의 배경은 공포가 커질수록 법을 잠시 미뤄도 된다는 유혹 역시 강해진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법치주의: 고문으로 만들어진 자백이 진실이 될 수 없는 이유
<모리타니안>에서 가장 견디기 어려운 장면은 모하메두가 관타나모 수용소에서 강압적인 심문을 받는 과정입니다. 이 장면이 불편한 이유는 단순히 묘사가 잔인해서가 아닙니다. 법과 국가안보라는 이름 아래 사람의 정신을 무너뜨리고, 그렇게 얻은 진술을 다시 구금의 근거로 사용하려 했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영화는 국가가 법치주의의 경계를 스스로 무너뜨릴 때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를 모하메두의 경험을 통해 보여줍니다.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의 수감자 처우 조사보고서에는 모하메두를 대상으로 준비된 특별 심문 계획이 등장합니다. 해당 계획에는 장시간 심문과 수면 조절, 감각 차단, 빛과 소음의 활용, 두건 착용, 위협 등 다양한 압박 방식이 포함됐습니다. 실제 심문 과정에서는 극심한 수면 박탈과 추위, 고통스러운 자세, 성적 모욕, 가족을 해치겠다는 협박 등이 사용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는 눈이 가려진 채 배에 태워져 다른 장소로 끌려가는 것처럼 위장된 상황도 겪었습니다(출처: 미국 상원 군사위원회 보고서).
따라서 모하메두가 워터보딩을 당했다고 단정하기보다는 공식 조사와 공개 기록으로 확인되는 구체적인 심문 방식을 설명하는 편이 정확합니다. 워터보딩은 얼굴에 천을 덮고 물을 부어 익사하는 듯한 공포를 유발하는 고문 방식이지만, 모든 관타나모 수감자에게 동일하게 사용된 것은 아닙니다. 확인되지 않은 고문 방식을 추가하면 오히려 실제로 기록된 폭력의 심각성이 흐려질 수 있습니다.
강압적인 심문이 문제가 되는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인간의 존엄성을 침해하기 때문입니다. 고문은 사람을 정보의 출처가 아닌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취급합니다. 전쟁이나 테러 같은 비상상황에서도 고문을 허용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한번 예외를 인정하면 국가가 ‘위험한 사람’이라고 분류한 대상에게는 어디까지 폭력을 행사해도 되는지 경계를 정하기 어려워집니다.
수사의 관점에서도 고문은 신뢰하기 어려운 결과를 낳습니다. 극심한 고통과 공포를 겪는 사람은 진실을 말하기보다 고문을 멈추게 할 수 있는 답을 선택할 가능성이 큽니다. 심문자가 원하는 이야기를 눈치챈 뒤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그에 맞는 진술을 만들어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얻어진 강압적 자백은 실제 사건의 진실을 밝히기는커녕 잘못된 방향으로 수사를 이끌고, 진짜 위험 인물을 놓치게 만들 수 있습니다.
모하메두 역시 심문 과정에서 자신이 하지 않은 일까지 인정하는 진술을 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군 검찰관 스튜어트 카우치가 사건에서 손을 떼기로 한 결정적인 이유도 정부가 제시한 핵심 진술이 고문과 강압에 오염됐다고 판단했기 때문입니다. 검사는 무조건 유죄판결을 끌어내는 사람이 아니라 적법한 증거를 바탕으로 정의를 실현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개인적으로 피의자가 의심스럽다고 생각하더라도 사용할 수 없는 증거를 이용해 기소한다면 법률가로서 지켜야 할 선을 넘게 됩니다.
법치주의란 단순히 법률 조항이 존재하는 상태를 의미하지 않습니다. 국가기관도 법이 정한 절차와 한계 안에서 권력을 행사해야 한다는 원칙입니다. 경찰과 군대, 정보기관이 좋은 목적을 주장한다고 해서 법을 넘어설 수 있다면 법은 시민에게만 의무를 부과하는 도구로 전락합니다. 법치주의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수사기관의 행위 역시 독립적인 법원의 심사를 받아야 하고, 위법하게 수집된 증거는 재판에서 배제돼야 합니다.
이 장면을 보며 직장에서 중요한 자료 오류가 발생했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당시 팀원들은 평소 업무 속도가 느리고 실수가 잦다는 평가를 받던 동료를 곧바로 의심했습니다. 저 역시 주변의 분위기에 휩쓸려 그 사람이 잘못했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러 사람이 같은 사람을 지목하자 그것이 이미 확인된 사실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메일과 파일 수정 이력을 차례로 살펴본 결과, 오류는 다른 부서에서 전달한 원본 자료에 있었습니다. 의심받던 동료는 해당 자료를 그대로 반영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오류를 먼저 발견해 수정하려던 중이었습니다. 문제는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동료에게 남겨진 부정적인 인상이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먼저 의심했던 사람들 중 누구도 자신의 판단이 성급했다는 사실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물론 직장의 작은 오해를 관타나모의 장기 구금과 고문에 직접 비교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결론을 먼저 내려놓고 그 사람에게서 원하는 답을 얻으려는 구조가 얼마나 위험한지는 공통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공정한 조사는 담당자가 믿고 싶은 이야기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예상과 다른 기록까지 검토하는 과정이어야 합니다.
<모리타니안>은 법치주의가 범죄 혐의자를 보호하기 위한 사치가 아니라는 점을 말합니다. 적법한 절차를 지키는 것은 무고한 사람을 보호하는 동시에 국가가 잘못된 증거에 의존하는 것을 막는 방법입니다. 테러를 방지한다는 명분이 아무리 중요해도 고문과 불법 구금을 허용한다면, 국가는 자신이 지키려던 자유와 인권의 가치를 스스로 훼손하게 됩니다. 법이 가장 필요한 순간은 모든 사람이 침착하고 이성적일 때가 아니라, 분노 때문에 법을 건너뛰고 싶어질 때입니다.
무죄추정원칙: 의심스러운 사람에게도 동일한 절차가 필요한 이유
영화 속 변호사 낸시 홀랜더가 인상적인 이유는 모하메두의 결백을 처음부터 확신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모하메두가 좋은 사람인지, 모든 말을 믿을 수 있는지를 먼저 판단하지 않습니다. 한 사람이 정식 기소나 재판 없이 수년 동안 구금돼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미국 정부에 구금의 법적 근거와 증거를 제시하라고 요구합니다. 이것이 <모리타니안>이 보여주는 무죄추정원칙의 출발점입니다.
무죄추정원칙은 범죄 혐의를 받는 사람이라도 법원의 유죄판결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무죄로 취급해야 한다는 형사법의 기본 원칙입니다. 여기서 ‘무죄로 추정한다’는 말은 피의자의 말을 무조건 믿거나 수사를 중단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범죄를 주장하는 국가가 객관적인 증거를 제시하고, 피고인에게 반박할 기회를 제공하며, 독립적인 재판부가 양측의 주장을 검토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 원칙이 필요한 이유는 국가와 개인이 가진 힘이 처음부터 동등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국가는 수사기관과 정보기관, 구금시설, 방대한 자료와 예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반면 구금된 개인은 자신의 사건 자료를 열람하거나 증인을 찾는 일조차 어렵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피의자에게 스스로 결백을 증명하라고 요구한다면 사실상 불가능한 책임을 떠넘기는 셈이 됩니다. 그래서 형사절차에서는 국가가 유죄를 증명해야 하고, 합리적인 의심이 남는다면 처벌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이 적용됩니다.
낸시가 마주한 가장 큰 장벽은 정부가 보유한 자료가 대규모로 가려져 있거나 기밀로 지정돼 있었다는 점입니다. 변호인이 어떤 증거로 의뢰인이 구금됐는지 알 수 없다면 그 증거의 오류를 지적하거나 반대 자료를 제시할 수도 없습니다. 영화 속 붉게 지워진 문서들은 단순한 시각적 장치가 아닙니다. 국가안보를 이유로 정보가 차단될 때 피구금자의 방어권이 얼마나 쉽게 무력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상징입니다.
모하메두 측은 인신보호 청구를 통해 구금의 적법성을 다퉜고, 2010년 미국 연방법원은 그의 석방을 명령했습니다. 그러나 미국 정부가 항소하면서 그는 곧바로 자유를 얻지 못했습니다. 항소법원은 사건을 다시 검토하도록 돌려보냈고, 모하메두는 이후에도 관타나모에 남아 있어야 했습니다. 그는 2016년 행정부의 정기심사위원회가 계속 구금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한 뒤에야 모리타니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재판에서 완전히 무죄가 확정됐지만 오바마 정부의 항소 때문에 계속 복역했다”고 표현하는 것은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신보호 사건은 일반 형사재판에서 유무죄를 판단하는 절차와 성격이 다르고, 모하메두는 형사 유죄판결에 따라 형기를 복역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연방법원이 2010년 구금의 법적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보고 석방을 명령했지만, 정부의 항소와 추가 절차로 인해 실제 석방은 2016년에 이뤄졌습니다.
이처럼 사실을 구체적으로 구분해야 하는 이유도 무죄추정원칙과 연결됩니다. 모하메두를 무조건 완벽한 피해자로 꾸미기 위해 불편한 과거를 삭제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는 과거 알카에다와 연결된 이력이 있었고, 미국 정부가 의심할 만한 정황도 일부 존재했습니다. 하지만 의심스러운 정황과 법적으로 증명된 범죄는 다릅니다. 오히려 의심받을 만한 사람에게도 동일한 절차를 적용할 수 있어야 무죄추정원칙의 가치가 분명해집니다.
저 역시 직장에서 자료 오류의 책임자로 한 동료를 쉽게 의심했던 경험을 통해 이 원칙을 다르게 바라보게 됐습니다. 당시에는 그 동료가 과거에 실수한 적이 있다는 사실이 이번 일의 책임까지 증명해 주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이전의 평판은 이번 사건의 객관적인 증거가 아니었습니다. 메일 발송 시각과 파일 수정 기록을 확인한 뒤에야 실제 원인이 다른 곳에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한번 형성된 의심은 반대 증거가 나타나도 쉽게 사라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의 첫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새로운 정보까지 기존 믿음에 맞춰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번에는 아니더라도 평소에 실수가 많았으니 의심받을 만했다”는 식으로 판단을 정당화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이런 태도를 허용하면 평판이 좋지 않은 사람은 매번 결백을 스스로 입증해야 하고, 신뢰받는 사람은 같은 실수를 해도 의심에서 벗어나는 불공정한 구조가 만들어집니다.
공정함은 착해 보이는 사람의 편을 드는 것이 아닙니다. 개인적인 호감과 평판을 잠시 내려놓고 누구에게나 동일한 확인 절차를 적용하는 태도입니다. 누군가를 의심할 수는 있지만, 의심을 곧바로 사실로 취급해서는 안 됩니다. 책임을 묻기 전에는 당사자의 설명을 듣고, 객관적인 기록을 확인하며, 반대되는 증거도 함께 살펴야 합니다.
물론 국가가 테러 위험을 조사하고 필요한 경우 피의자를 구금하는 행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실제 위협을 방치하면 무고한 시민들이 큰 피해를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위험이 크다는 이유로 증거의 기준을 낮추거나 변호인의 조력을 제한한다면 잘못된 사람을 처벌할 가능성도 함께 커집니다. 안보와 인권은 둘 중 하나만 선택해야 하는 가치가 아니라, 적법한 절차 안에서 함께 지켜야 할 가치입니다.
<모리타니안>은 관객에게 모하메두의 모든 말을 믿으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대신 국가가 한 사람의 자유를 빼앗으려면 감정이나 추측이 아니라 검증 가능한 증거를 제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무죄추정원칙은 죄를 지은 사람을 무조건 풀어주기 위한 장치가 아니라, 권력을 가진 국가가 잘못된 사람을 처벌하지 않도록 요구하는 최소한의 기준입니다. 이 원칙이 가장 필요한 때는 피의자가 우리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일 때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이미 그를 유죄라고 믿고 있을 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