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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백룸' 리뷰 (리미널 스페이스, 심리극, 케인 파슨스)

yohaha3640 2026. 7. 19. 2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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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살 소년이 방구석에서 만든 9분짜리 유튜브 영상이 7,880만 뷰를 돌파하고, 그 소년이 20살에 A24 최연소 감독이 됐습니다. 처음 이 소식을 접했을 때 솔직히 믿기지 않았습니다. 영화 백룸은 그 황당한 이야기가 실제로 스크린에 펼쳐진 결과물입니다.

     

    영화 '백룸'

    리미널 스페이스, 백룸이 일반 공포영화와 다른 이유

    영화 백룸을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리미널 스페이스(Liminal Space)​라는 개념을 알아둘 필요가 있습니다. 리미널 스페이스란 복도, 빈 대기실, 문을 닫은 쇼핑몰처럼 원래는 사람이 있어야 하지만 아무도 존재하지 않는 공간을 의미합니다. 인간의 뇌는 이러한 공간을 마주하면 본능적으로 "무언가 잘못됐다"는 신호를 받아들이며, 실제 위험이 없어도 강한 불안감을 느끼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백룸이 보여주는 공포는 괴물이 갑자기 튀어나오는 점프 스케어보다 훨씬 오래 기억에 남습니다.

    백룸의 시작도 흥미롭습니다. 2019년 인터넷 커뮤니티 포챈(4chan)에 올라온 노란 벽과 형광등이 반복되는 사진 한 장이 수많은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했고, 이후 '현실에서 벽을 뚫고 떨어지면 끝없이 이어지는 공간에 갇힌다'는 도시괴담으로 발전했습니다. 영화는 이 설정을 그대로 가져오면서 약 6억 제곱마일 규모의 무한 공간이라는 세계관을 구축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노란 벽, 방향을 알 수 없는 복도, 일정한 간격으로 울리는 형광등 소음은 관객이 공간 자체를 적처럼 느끼도록 만듭니다.

    심리학적으로도 이러한 연출은 충분한 근거가 있습니다. 사람은 명확한 위험보다 이유를 설명할 수 없는 불확실성에서 더 큰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출처: 미국심리학회(APA)) 그래서 백룸의 진짜 공포는 괴물보다 공간 그 자체입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도대체 출구가 어디일까"라는 질문을 계속 던지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관객 역시 주인공과 같은 심리 상태를 경험하게 됩니다. 공포를 눈앞의 위협이 아니라 공간의 공허함으로 만들어낸 점이야말로 백룸이 기존 공포영화와 가장 크게 다른 지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심리극으로 해석한 백룸, 공간보다 무서운 것은 인간의 내면

    많은 사람들이 백룸을 단순한 괴담 영화로 생각하지만, 저는 오히려 심리극에 더 가까운 작품이라고 느꼈습니다. 주인공 클라크는 다 망해가는 가구매장에서 생활하다시피 하며, 메리 박사와 상담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상황극을 놀라울 정도로 자연스럽게 수행합니다. 처음에는 캐릭터의 개성 정도로 보였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이 능력은 현실과 환상의 경계가 무너진 인물의 심리를 보여주는 장치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그래서 백룸은 단순히 이상한 공간이 아니라 클라크의 불안과 공허가 시각적으로 구현된 장소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러한 해석을 더욱 설득력 있게 만드는 것이 바로 파운드 푸티지(Found Footage) 연출입니다. 파운드 푸티지란 누군가 촬영한 영상을 우연히 발견한 것처럼 구성하는 촬영 방식으로, 실제 사건을 목격하는 듯한 현장감을 극대화합니다. 여기에 VHS 특유의 거친 화질과 흔들리는 화면이 더해지면서 관객은 제3자의 입장이 아니라 클라크와 함께 백룸을 떠도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화면이 선명하지 않을수록 상상은 커지고, 설명이 적을수록 불안은 더 깊어집니다.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직장 초년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업무 매뉴얼은 존재했지만 실제 현장은 상황마다 달랐고, 선배들마다 일하는 방식도 제각각이라 무엇이 정답인지 알기 어려웠습니다. 아무리 열심히 해도 방향을 잃은 기분이 들었고, 퇴근길마다 '내가 제대로 하고 있는 걸까'라는 고민이 반복됐습니다. 백룸 속에서 출구를 찾지 못하고 같은 공간을 계속 걷는 클라크의 모습이 그 시절 제 모습과 많이 닮아 있었습니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서 방향은 누군가 알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았고, 영화 역시 그런 과정을 은유적으로 보여주는 심리극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케인 파슨스, 백룸이 증명한 새로운 공포영화의 가능성

    영화 백룸이 더욱 놀라운 이유는 연출을 맡은 케인 파슨스(Kane Parsons)​의 나이와 제작 과정에 있습니다. 그는 유튜브에서 백룸 시리즈를 제작하며 이름을 알렸고, 기존 인터넷에서 소비되던 백룸 콘텐츠가 아쉽다고 느껴 무료 3D 제작 프로그램인 블렌더(Blender)를 이용해 직접 자신만의 공간을 구현했습니다. 이후 그 영상은 폭발적인 반응을 얻었고, 결국 A24와 함께 장편 영화로 제작되는 보기 드문 사례를 만들어냈습니다.

    영화에서도 공간 연출은 가장 큰 강점으로 꼽힙니다. 제작진은 사운드 스테이지 네 개를 연결해 약 2,740제곱미터 규모의 백룸 세트를 실제로 만들었으며, 세트 내부는 도면 없이는 길을 잃을 정도로 복잡하게 설계됐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에 광각 렌즈(Wide Angle Lens)를 적극 활용해 복도는 더욱 길어 보이고 천장은 더욱 높아 보이도록 왜곡했습니다. 이러한 원근감은 공간이 살아 움직이는 것 같은 착각을 만들며, 형광등의 일정한 소음과 빈티지 신시사이저 기반의 음악이 더해져 심리적인 압박감을 극대화합니다.

    다만 모든 부분이 완벽했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영화는 내러티브 엘립시스(Narrative Ellipsis), 즉 핵심 설정을 의도적으로 생략하고 관객이 스스로 해석하도록 만드는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연출은 미스터리를 유지하는 데는 효과적이지만, 세계관에 대한 최소한의 설명조차 부족하다고 느끼는 관객에게는 답답함으로 이어질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분위기와 공간 연출은 매우 뛰어났지만, 이야기의 중심축이 조금만 더 명확했다면 몰입도가 훨씬 높아졌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럼에도 케인 파슨스가 보여준 가능성은 분명합니다. 공포를 괴물이나 잔혹한 장면이 아니라 공간과 심리만으로 구현했다는 점은 기존 장르의 문법을 새롭게 확장한 시도였습니다. A24가 그를 선택한 이유도 여기에 있을 것입니다. 앞으로 케인 파슨스가 더 탄탄한 서사까지 갖춘 작품을 선보인다면 현대 공포영화를 대표하는 감독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참고: https://youtu.be/SiO8watn-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