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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고독사 사망자 수는 2022년 기준 3,378명으로, 10년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었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처음 이 수치를 봤을 때, 솔직히 숫자가 와닿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영화 '스틸 라이프'를 보고 나서는 달랐습니다. 저 숫자 하나하나가 이름이 있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습니다.

고독사,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마지막을 마주하다
영화 스틸 라이프는 화려한 사건이나 자극적인 전개 대신 현대 사회가 외면하고 있는 고독사 문제를 담담하게 비춥니다. 작품의 주인공 존 메이는 가족이나 지인 없이 세상을 떠난 무연고 사망자의 장례를 담당하는 공무원입니다. 무연고 사망자란 사망 이후 연고자가 확인되지 않아 지방자치단체가 장례 절차를 대신 진행해야 하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우리나라 역시 관련 법에 따라 공영장례 제도가 운영되고 있지만, 현실에서는 최소한의 행정 절차만 진행되는 경우가 적지 않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현실을 특별히 비판하기보다 한 사람의 마지막이 얼마나 쉽게 잊힐 수 있는지를 조용히 보여줍니다. 저는 영화를 보면서 고독사는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재난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누구도 혼자 태어나지 않았지만, 누군가는 아무도 배웅하지 않는 마지막을 맞이한다는 사실은 생각보다 큰 충격으로 다가왔습니다. 특히 존 메이는 단순히 서류를 정리하는 데 그치지 않고 고인의 집을 찾아 남겨진 사진과 편지, 오래된 물건을 살펴보며 가족을 찾으려 애씁니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한 행정 업무일 수 있지만, 그에게는 한 사람의 삶을 세상에 마지막으로 증명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저 역시 눈에 띄지 않는 행정 업무를 맡아 본 경험이 있는데, 처음에는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작은 실수 하나가 전체 업무를 흔드는 모습을 직접 겪으면서 보이지 않는 역할이 조직을 지탱한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존 메이가 보여준 태도 역시 같은 의미였습니다. 사람들은 결과만 기억하지만, 그 결과를 만들어내는 과정에는 반드시 누군가의 묵묵한 책임감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영화는 조용하지만 강하게 전달합니다.
장례 의미, 한 사람의 인생을 기억하는 마지막 예의
스틸 라이프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장례를 단순한 절차가 아니라 삶을 기억하는 마지막 의식으로 바라본다는 점입니다. 영화 후반부에서 존 메이는 빌리라는 남성의 장례를 준비하게 됩니다. 빌리는 알코올 의존증으로 노숙 생활과 교도소를 반복했던 인물이지만, 존 메이는 겉으로 드러난 모습만으로 그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변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의 삶을 하나씩 기록하고, 전쟁에서의 경험과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모아 추도문을 완성합니다. 추도문이란 고인의 삶을 기리고 마지막 인사를 전하는 글로, 장례에서 가장 인간적인 의미를 담고 있는 절차 가운데 하나입니다. 존 메이는 좋은 관과 비석을 직접 고르고, 함께 생활했던 노숙인들의 이야기를 듣고, 전우를 찾아가 빌리의 과거를 확인하며 그의 인생을 하나의 이야기로 완성해 갑니다. 저는 이 과정을 보며 직장에서도 비슷한 경험을 떠올렸습니다. 어떤 사람은 결과만 보고 쉽게 평가받지만, 실제로는 보이지 않는 사정과 과정이 존재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처음에는 이해하기 어려웠던 동료도 시간이 지나 그의 상황을 알게 되면서 생각이 달라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영화는 바로 그 지점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이해한다는 것은 현재의 모습만 보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온 시간을 함께 들여다보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스틸 라이프의 장례는 죽음을 위한 의식이 아니라, 세상에서 잊혀질 뻔한 한 사람의 삶을 다시 기억하는 과정으로 다가왔습니다.
삶의 가치,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의 의미
영화가 끝난 뒤 가장 오래 남는 질문은 '한 사람의 삶의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였습니다. 스틸 라이프는 성공이나 명예, 재산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것 같던 사람도 누군가 한 명이 진심으로 기억해 준다면 그 삶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영화 속 존 메이는 평생 다른 사람들의 마지막을 정성껏 배웅했지만, 정작 자신은 새로운 삶을 시작하려던 순간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납니다. 가장 아이러니한 장면은 평생 장례를 준비했던 그의 마지막 장례를 아무도 함께하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영화는 거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가 생전에 장례를 치러 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환영처럼 그의 마지막 길을 함께하는 장면은 화려한 대사 없이도 깊은 울림을 남깁니다. 현실에서도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은 무연고 사망자의 상당수가 정신건강 취약계층이며, 사회적 돌봄이 부족한 환경에서 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을 생각하면 존 메이의 존재는 단순한 공무원이 아니라 사회가 놓친 빈자리를 메우는 사람이었습니다. 저 역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당장은 드러나지 않는 일을 꾸준히 해 온 사람들이 시간이 지나 가장 큰 신뢰를 얻는 모습을 여러 번 보았습니다. 스틸 라이프는 죽음을 다루는 영화이지만, 결국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지금 곁에 있는 사람을 얼마나 소중히 바라보고 있는지를 묻습니다. 그래서 이 작품은 슬픈 영화가 아니라 사람의 존엄과 삶의 가치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오래 남는 드라마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