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목차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9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가 드디어 국내 개봉했습니다. 저도 극장에서 보고 나왔는데, 차를 몰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이상하게 무거웠습니다. 그냥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고용불안, 평생직장이라는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불안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면, 저는 업무가 가장 많았을 때보다 조직 개편이나 인력 조정 이야기가 들릴 때가 더 힘들었습니다. 당장 해고 통보를 받은 것도 아닌데 괜히 주변 분위기를 살피게 되고, 상사의 말투나 회의 내용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됐습니다. 담당 업무가 갑자기 바뀌거나 기존 인력이 다른 부서로 이동하면 혹시 다음 순서가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겉으로는 평소처럼 일했지만, 마음 한편에서는 내가 언제든 다른 사람으로 대체될 수 있다는 불안이 계속 자라났습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의 주인공 유만수는 이런 고용불안이 극단적으로 현실화된 인물입니다. 그는 태양제지에서 오랜 기간 근무하며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성을 인정받은 베테랑입니다. 회사에 대한 애정도 강했고, 자신이 쌓아온 경력과 능력에 자부심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외부 자본에 인수되고 구조조정이 시작되면서 그의 경력은 한순간에 의미를 잃습니다. 회사는 비용 절감과 효율화를 이유로 인력을 정리하고, 만수는 개인적인 잘못이나 업무 능력 부족 때문이 아니라 조직의 계산에 따라 회사를 떠나게 됩니다.
이 장면이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는 고용불안이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막기 어려운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많은 직장인은 성실하게 일하고 성과를 내면 회사에서 오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산업 구조가 바뀌거나 기업의 경영 전략이 달라지면 개인의 능력과 상관없이 자리가 사라질 수 있습니다. 특히 오랜 기간 한 직장에서 근무한 사람일수록 변화에 적응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익숙한 업무 방식과 조직 문화에 맞춰 경력을 쌓았기 때문에, 회사를 떠나는 순간 자신이 가진 경험이 다른 곳에서도 그대로 인정받을 것이라는 보장이 없기 때문입니다.
만수에게 해고는 단순히 월급을 잃는 사건이 아닙니다. 그는 직업과 함께 자신의 정체성까지 흔들리게 됩니다. 사람은 직장을 통해 경제적인 소득만 얻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역할과 자존감도 함께 얻습니다. 아침에 출근할 이유가 있고, 자신을 필요로 하는 조직이 있으며, 누군가에게 전문성을 인정받는 경험이 일상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합니다. 그런데 해고는 이런 연결을 한꺼번에 끊어버립니다. 만수는 자신이 가족을 책임지는 사람이며, 집과 생활을 지켜야 하는 가장이라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 그에게 실직은 단순한 실패가 아니라 자신이 유지해온 삶 전체가 무너지는 사건으로 다가옵니다.
저 역시 직장에서 조직 변화가 있을 때 비슷한 불안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회사가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하거나 업무를 통합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면, 효율이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보다 내 업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었습니다. 실제로 자동화나 인공지능 기술이 도입되면서 반복 업무가 줄어드는 모습을 보며, 앞으로는 지금까지 해온 방식만으로 버티기 어렵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단순히 맡은 일을 잘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습니다. 새로운 업무를 배우고, 다른 부서와 협업하며, 내가 가진 경험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하는 능력도 필요했습니다.
영화는 고용불안을 개인의 약함이나 준비 부족으로만 설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개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거대한 경제 구조와 기업의 결정 앞에서는 무력해질 수 있다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만수는 성실하지 않았던 사람이 아니며, 무능한 직원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누구보다 자신의 일을 잘 알고 자부심을 가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회사의 계산이 달라지는 순간 그는 불필요한 인력으로 분류됩니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현대 직장인이 느끼는 가장 근본적인 두려움을 건드립니다. 지금까지 쌓아온 경력과 성과가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의미가 없어질 수도 있다는 두려움입니다.
다만 고용불안을 줄이기 위해 개인이 할 수 있는 노력도 분명 존재합니다. 한 회사의 직함에만 자신을 묶어두기보다, 자신이 가진 기술과 경험을 구체적으로 정리해 보는 것이 필요합니다. 새로운 도구를 익히고, 다른 사람과 협업할 수 있는 능력을 키우며, 현재 업무가 사라지더라도 다른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준비해야 합니다. 물론 이런 준비가 모든 해고를 막아주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변화가 찾아왔을 때 자신을 완전히 잃지 않도록 돕는 안전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
'어쩔수가없다'가 보여주는 고용불안은 특별한 사람에게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평범하게 출근하고, 맡은 일을 성실하게 수행하며, 가족과 일상을 지키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만수의 불안은 낯설지 않습니다. 그가 무너지는 과정을 보며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는, 그의 상황이 전혀 남의 이야기처럼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화는 우리에게 묻습니다. 회사가 더 이상 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순간, 나는 무엇으로 나 자신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이야말로 고용불안 시대를 살아가는 직장인이 한 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느꼈습니다.
해고의심리, '어쩔 수 없다'는 말이 위험해지는 과정
해고를 경험한 사람의 심리를 단순히 실망이나 분노만으로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해고는 경제적인 손실뿐 아니라 자존감, 인간관계, 생활 리듬, 미래 계획까지 동시에 흔드는 사건입니다. 특히 오랜 기간 한 직장에서 일한 사람일수록 충격은 더 클 수 있습니다. 자신이 회사에 바친 시간과 노력이 인정받지 못했다는 배신감이 생기고, 앞으로 다른 곳에서도 자신을 받아주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이 커집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이런 해고의심리가 어떻게 한 사람의 판단을 뒤틀고, 결국 자신도 이해하기 어려운 선택으로 이어지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유만수는 해고된 직후부터 완전히 무너지는 인물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재취업을 위해 노력하고, 자신의 경력을 인정해 줄 회사를 찾으려 합니다. 오랜 경력과 전문성이 있으니 곧 새로운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구직 기간이 길어지고, 면접에서 계속 거절당하며, 자신보다 젊거나 조건이 좋은 경쟁자들을 마주하면서 그의 자존감은 조금씩 무너집니다. 처음에는 상황을 탓하던 사람이 점차 경쟁자들을 탓하게 되고, 결국 자신의 실패를 해결하기 위해 다른 사람을 제거해야 한다는 극단적인 논리로 이동합니다.
이 과정에서 반복되는 말이 바로 "어쩔 수가 없다"입니다. 이 표현은 현실을 담담하게 받아들이는 말처럼 들리지만, 영화에서는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심리적 방어 수단으로 작동합니다. 사람은 자신이 잘못된 선택을 했다는 사실을 그대로 인정하기 어려울 때, 그럴듯한 이유를 만들어 스스로를 설득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를 합리화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만수 역시 처음부터 자신을 잔인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가족을 지켜야 하고, 집을 잃을 수 없으며, 자신의 삶을 되찾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없다고 믿습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다"는 믿음이 강해질수록 선택의 범위는 오히려 더 좁아집니다.
해고의심리에서 특히 위험한 부분은 수치심입니다. 실직한 사람은 자신이 실패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주변에 상황을 숨기기도 합니다. 가족에게 솔직하게 말하지 못하고, 친구나 동료와의 만남을 피하며, 도움을 요청하는 것조차 자존심이 상하는 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겉으로는 화를 내거나 무심한 척하지만, 속으로는 자신이 쓸모없는 사람이 된 것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합니다. 만수 역시 단순히 돈이 부족해서 무너지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가족에게 존경받는 가장이며, 집과 생활을 지켜온 사람이라는 믿음이 흔들리면서 점점 더 극단적인 행동으로 나아갑니다.
저도 직장생활 초반에 업무 실수를 했을 때 비슷한 심리를 경험한 적이 있습니다. 중요한 자료를 잘못 전달한 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지보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무능하게 보지는 않을까 하는 걱정이었습니다. 실수를 인정하면 평가가 나빠질 것 같아 혼자 해결하려고 했고, 오히려 보고가 늦어지면서 상황을 더 복잡하게 만들었습니다. 당시에는 일을 책임지려는 행동이라고 생각했지만, 돌이켜 보면 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현실을 외면한 것이었습니다.
그 일을 겪은 뒤 저는 어려운 상황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 자신을 변명하는 것이 아니라 사실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것이라는 점을 배웠습니다. 무엇이 잘못됐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과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 무엇인지 구분해야 했습니다. 해고 역시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회사의 결정이 부당하거나 구조적인 문제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그 분노를 다른 구직자나 가족에게 돌리기 시작하면 문제는 더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자신이 받은 상처를 인정하되, 그 상처가 다른 사람을 해칠 권리가 되지는 않는다는 선을 지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영화 속 만수는 자신과 같은 처지에 놓인 경쟁자들을 적으로 바라봅니다. 하지만 그들 역시 각자의 가족과 생계를 책임지고 있으며, 오랜 경력을 잃은 뒤 새로운 자리를 찾는 사람들입니다. 만수가 그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질투이면서 동시에 두려움입니다. 상대방이 자신보다 능력이 뛰어나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의 존재가 자신의 실패 가능성을 증명하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경쟁자를 없애면 자신의 불안도 사라질 것이라고 착각합니다. 그러나 불안의 원인은 타인이 아니라 무너진 자존감과 상실된 정체성에 있었기 때문에, 경쟁자를 제거해도 마음은 안정되지 않습니다.
해고의심리를 건강하게 다루기 위해서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해고 직후에는 분노하고, 억울해하고, 미래를 걱정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문제는 그 감정을 인정하지 않고 강한 척하거나, 모든 책임을 자신이나 타인 한쪽에만 돌리는 데서 시작됩니다. 가족이나 가까운 사람에게 상황을 솔직하게 알리고, 필요하다면 전문가나 취업 지원 기관의 도움을 받는 것도 현실적인 방법입니다. 무엇보다 직업을 잃었다고 해서 사람의 가치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계속 확인해야 합니다.
'어쩔수가없다'는 해고된 사람이 왜 무너지는지 보여주면서도, 그의 행동을 쉽게 용서하지 않습니다. 관객은 만수의 불안과 절박함에는 공감할 수 있지만, 그가 선택한 방식까지 받아들이기는 어렵습니다. 바로 그 불편함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인간은 상황의 피해자일 수 있지만, 동시에 자신의 선택에 대한 책임도 져야 합니다. 해고의심리를 이해한다는 것은 잘못된 행동을 정당화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사람이 어떤 과정을 거쳐 위험한 선택에 도달하는지 이해함으로써, 현실에서 그 지점에 이르기 전에 멈출 방법을 찾는 데 의미가 있습니다.
직장생존,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답은 아닙니다
직장생존이라는 말을 들으면 많은 사람은 성과를 더 많이 내고, 동료보다 앞서며, 회사에 꼭 필요한 사람이 되는 것을 떠올립니다. 실제로 직장에서는 한정된 승진 기회와 보상, 좋은 평가를 두고 경쟁이 발생합니다. 같은 팀에서 일하는 동료라고 해도 평가 시기가 다가오면 서로의 성과를 의식하게 되고, 누군가 칭찬을 받으면 자신의 위치가 줄어드는 것처럼 느끼기도 합니다. 영화 '어쩔수가없다'는 이런 직장생존의 논리가 극단으로 흘렀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보여줍니다.
만수는 재취업을 위해 경쟁자들의 정보를 수집하고, 그들의 경력과 약점을 분석합니다. 처음에는 구직 시장을 파악하기 위한 행동처럼 보이지만, 점차 경쟁자들을 사람으로 보기보다 제거해야 할 장애물로 인식하기 시작합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다른 구직자들 역시 만수와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들도 한때는 전문성을 인정받으며 일했지만 산업의 변화와 구조조정 속에서 밀려난 사람들입니다. 가정이 무너지고 있거나, 자신의 경력과 무관한 일을 하며 버티고 있거나, 남아 있는 자리를 지키기 위해 불안해하는 모습은 모두 현대 직장인의 다른 얼굴처럼 보입니다.
이 설정이 씁쓸한 이유는 피해자끼리 경쟁하도록 만드는 구조를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같은 산업에서 밀려난 사람들이 서로 힘을 합쳐 문제를 해결하는 대신, 단 하나의 자리를 두고 서로를 적으로 바라봅니다. 회사나 산업 구조가 만든 불안이 개인 간의 갈등으로 전환되는 것입니다. 실제 직장에서도 비슷한 일이 벌어집니다. 인력이 부족하거나 평가 기준이 불투명한 조직에서는 동료의 성과가 나의 위협으로 느껴질 수 있습니다. 협업해야 할 사람을 경쟁자로만 보기 시작하면 정보 공유가 줄어들고, 실수를 숨기며, 서로의 실패를 은근히 기대하는 분위기까지 생길 수 있습니다.
저 역시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쟁에 대한 불안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주변 동료가 좋은 평가를 받거나 새로운 프로젝트를 맡으면 축하하는 마음보다 내가 뒤처지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먼저 들기도 했습니다. 모르는 업무가 있어도 질문하면 능력이 부족해 보일 것 같아 혼자 해결하려고 했고, 결국 시간이 더 오래 걸리거나 실수가 커진 적도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혼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능력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고립된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던 셈입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직장생존에 가장 필요한 것은 모든 일을 혼자 잘하는 능력이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문제가 생겼을 때 빠르게 공유하고, 필요한 도움을 요청하며, 다른 사람의 경험을 활용할 줄 아는 사람이 오히려 변화에 강했습니다. 새로운 시스템이나 업무 방식이 도입될 때도 혼자 모든 것을 익히려는 사람보다 서로 정보를 나누고 배우는 팀이 더 빠르게 적응했습니다. 결국 회사에서 오래 살아남는 힘은 경쟁력뿐 아니라 협업 능력, 신뢰, 변화에 대한 유연성에서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영화 속 만수는 경쟁자를 제거하면 자신의 자리가 보장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러나 그가 원하던 자리를 얻는 순간에도 승리의 기쁨은 오래가지 않습니다. 자동화된 공장과 로봇이 움직이는 공간에서 홀로 남은 그의 모습은 성공한 사람이라기보다 마지막까지 남겨진 사람에 가깝습니다. 함께 일할 동료를 모두 경쟁자로 보고 제거한 결과, 그는 자리를 얻었지만 관계와 인간성을 잃습니다. 영화는 이 장면을 통해 직장생존의 목표가 단순히 마지막 한 사람이 되는 것이 맞는지 묻습니다.
현대 직장에서는 자동화와 인공지능의 도입으로 업무 방식이 빠르게 바뀌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오래된 경험과 숙련도가 가장 중요한 자산이었지만, 이제는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역할을 전환하는 능력도 중요해졌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동료를 이겨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은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도 모든 변화에 혼자 대응하기는 어렵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경험과 강점을 가진 사람들이 협력할 때 조직도 살아남고 개인도 새로운 역할을 찾을 가능성이 높아집니다.
직장생존을 위해서는 자신의 능력을 꾸준히 키우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다만 그 과정이 동료를 밀어내거나 정보를 독점하는 방식이어서는 오래가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잘하는 일을 명확하게 알고, 부족한 부분은 다른 사람에게 배우며, 변화하는 환경에서 활용할 수 있는 역량을 넓혀야 합니다. 또한 회사의 평가와 직함만으로 자신의 가치를 판단하지 않는 태도도 중요합니다. 한 조직에서의 자리가 사라지더라도 자신이 가진 경험과 관계, 문제 해결 능력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저는 영화를 보며 직장에서 살아남는다는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됐습니다. 살아남는다는 것은 누군가를 이기고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변화가 찾아왔을 때 자신의 원칙을 잃지 않고, 다른 사람과 협력하며, 새로운 방식을 배우는 과정도 생존의 중요한 일부입니다. 만수는 직장을 얻었지만 자신이 지키고 싶었던 삶의 의미를 잃어버립니다. 그래서 그의 결말은 성공처럼 보이면서도 실패에 가깝게 느껴집니다.
'어쩔수가없다'는 경쟁을 무조건 부정하는 영화는 아닙니다. 현실에서 경쟁은 피하기 어렵고, 자신의 생계를 지키기 위한 노력도 필요합니다. 다만 경쟁이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잘못된 선택을 정당화하는 순간, 살아남는다는 목표 자체가 공허해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직장생존에서 정말 중요한 것은 다른 사람보다 오래 남는 것이 아니라, 변화 속에서도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잃지 않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회사를 버티게 만드는 힘은 두려움이 아니라 신뢰이며, 혼자 살아남으려는 사람보다 함께 살아갈 방법을 찾는 사람이 더 오래 성장할 수 있다는 메시지가 영화가 남긴 가장 큰 질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