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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레셔널 맨' 리뷰(자기합리화, 작가주의, 철학적 독선)

yohaha3640 2026. 8. 3. 19:26

목차


    직장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목소리 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진짜 위험한 건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경험이 떠오른 건 우디 앨런의 영화 '이레셔널 맨'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철학 교수 한 명이 살인을 통해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는 이야기인데, 황당하게 들리지만 현실에서 비슷한 구조를 꽤 자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영화 '이레셔널 맨'

    자기합리화가 잘못된 판단을 옳은 선택처럼 바꾸는 과정

    영화 ‘이레셔널 맨’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얼마나 쉽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잘못된 행동을 하면 곧바로 죄책감을 느끼고, 스스로의 선택을 돌아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인정하기보다, 그 판단이 옳았다고 믿을 수 있는 이유를 새롭게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영화 속 철학과 교수 에이브 루카스 역시 바로 이런 자기합리화의 과정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에이브는 삶에 대한 의욕을 잃은 채 대학에 부임합니다. 그는 철학을 가르치지만 정작 자신의 삶에서는 아무런 의미도 찾지 못합니다. 술에 의존하고, 인간관계에도 냉소적이며, 자신이 가르치는 철학적 개념조차 현실에서는 무의미하다고 여깁니다. 그러던 중 우연히 한 식당에서 부당한 판결로 아이를 빼앗길 위기에 처한 여성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에이브는 그 문제의 원인이 특정 판사에게 있다고 판단하고, 그 판사를 제거하면 한 가족의 삶을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상상처럼 보이지만, 에이브는 점차 자신의 계획에 도덕적인 의미를 부여합니다. 개인적인 원한도 없고, 경제적인 이익을 얻는 것도 아니며, 오직 누군가를 돕기 위한 행동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는 자신이 저지르려는 행위를 범죄로 바라보기보다 사회의 부조리를 바로잡는 결단으로 해석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에이브가 객관적인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식당에서 우연히 들은 대화만으로 사건의 전체 내용을 판단했고, 판사가 정말로 부도덕한 사람인지, 다른 해결 방법은 없는지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자신이 철학적 사고를 통해 옳은 결론에 도달했다고 확신합니다.

    이러한 심리는 인지 부조화라는 개념과 연결됩니다. 인지 부조화란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과 실제 행동이 충돌할 때 느끼는 불편함을 말합니다. 일반적으로는 잘못된 행동을 수정하거나 기존의 믿음을 바꾸는 방식으로 불편함을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종종 행동을 바꾸기보다 그 행동을 정당화하는 방향을 선택합니다. 에이브도 살인은 잘못이라는 기본적인 도덕 기준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하려는 행동은 평범한 살인이 아니라 더 큰 악을 막기 위한 선택이라고 믿음으로써 내적 충돌을 줄입니다.

    저는 직장생활에서도 자기합리화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하는 장면을 본 적이 있습니다. 몇 년 전, 한 프로젝트에서 기존 업무 방식을 전면적으로 바꾸자는 의견이 나왔습니다. 제안자는 현재 방식이 비효율적이고, 조직이 살아남기 위해서는 자신의 방법을 따라야 한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처음에는 논리적으로 들렸습니다.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에는 많은 사람이 공감했고, 저 역시 새로운 방식이 문제를 해결해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적용한 뒤에는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이어졌습니다. 현장 직원들의 업무량이 늘어났고, 새로운 절차가 기존 시스템과 충돌하면서 자료를 반복해서 수정해야 했습니다. 일부 직원은 문제점을 제기했지만, 제안자는 반대 의견을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태도로 해석했습니다. 결과가 좋지 않을수록 자신의 판단을 점검하기보다 실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습니다. 계획이 잘못됐을 가능성을 인정하는 대신, 실패의 원인을 다른 사람의 태도와 능력에서 찾은 것입니다.

    당시 저는 왜 결과가 나쁜데도 확신이 더 강해지는지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보니 그것 역시 자기합리화의 한 형태였습니다. 자신의 판단이 틀렸다고 인정하면 그동안의 결정과 지시, 주변 사람들에게 준 부담까지 함께 책임져야 합니다. 반대로 다른 사람들이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자신의 능력과 권위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때로 현실을 정확하게 보는 것보다 자신의 자존감을 지키는 해석을 선택합니다.

    에이브의 자기합리화가 위험한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는 처음부터 잔혹한 범죄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도덕과 정의를 오랫동안 고민해온 철학자였습니다. 그러나 지식이 많다는 사실이 올바른 판단을 보장하지는 않았습니다. 오히려 풍부한 철학적 언어는 자신의 욕망을 더 정교하게 포장하는 도구가 됐습니다. 자신이 특별한 존재이며, 평범한 사람들과 달리 복잡한 도덕 문제를 판단할 수 있다고 믿는 순간 자기합리화는 더욱 강해집니다.

    영화에서 에이브는 살인 계획을 세운 뒤 오히려 활력을 되찾습니다. 식욕이 돌아오고, 사람들과의 관계에도 적극적이 되며, 삶에 목적이 생긴 것처럼 행동합니다. 이는 자신의 행동이 옳다는 증거처럼 느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감정의 변화가 행동의 정당성을 증명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선택이 강한 성취감이나 해방감을 준다고 해서 그 선택이 도덕적으로 옳은 것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행동도 순간적으로는 삶의 통제권을 되찾은 듯한 느낌을 줄 수 있습니다.

    자기합리화를 막기 위해서는 자신의 의도를 믿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선한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확신보다 그 판단이 어떤 근거 위에 세워졌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반대 의견을 듣고, 자신의 결정으로 피해를 입을 사람이 누구인지 살펴보고, 결과가 예상과 다를 때 판단을 수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특히 조직에서는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일수록 자기 확신을 경계해야 합니다. 결정의 영향이 자신에게만 머무르지 않고 여러 사람에게 전달되기 때문입니다.

    ‘이레셔널 맨’은 자기합리화가 특별히 악한 사람에게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누구나 자신의 선택을 옳다고 믿고 싶어 하며, 불편한 현실보다 자신에게 유리한 설명을 받아들이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내가 합리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계속 질문하는 태도입니다. 영화 속 에이브의 비극은 잘못된 생각을 했다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자신의 생각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완전히 닫아버렸다는 데서 시작됩니다.

    작가주의가 드러낸 우디 앨런 특유의 불안한 인간관

    ‘이레셔널 맨’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영화의 줄거리뿐 아니라 우디 앨런의 작가주의적 연출 방식도 함께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작가주의란 감독을 단순히 제작 과정의 관리자가 아니라 작품의 세계관과 표현 방식을 결정하는 창작자로 바라보는 관점입니다. 같은 감독의 여러 작품에서 비슷한 주제와 인물, 대화 방식, 연출 특징이 반복된다면 그 영화들은 감독 개인의 생각이 반영된 하나의 세계로 읽힐 수 있습니다.

    우디 앨런의 영화에는 지적이지만 불안정한 인물들이 자주 등장합니다. 이들은 철학과 예술, 문학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지만 정작 자신의 감정과 욕망을 제대로 통제하지 못합니다. 겉으로는 논리적이고 세련된 언어를 사용하지만, 실제 행동은 충동적이거나 자기중심적입니다. ‘이레셔널 맨’의 에이브 역시 이러한 인물 유형을 그대로 이어갑니다. 그는 철학 교수로서 칸트와 키르케고르, 실존주의와 윤리에 대해 말하지만, 자신의 삶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도덕 원칙조차 무너뜨립니다.

    이 영화의 작가주의는 거창한 영상미보다 인물의 대화와 심리 변화에서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에이브와 질은 철학적 질문을 주고받으며 가까워집니다. 질은 에이브의 냉소와 지적인 태도에 매력을 느끼고, 에이브는 자신을 이해하려는 젊은 제자의 관심을 즐깁니다. 이들의 대화는 단순한 연애 감정만을 보여주지 않습니다. 지적인 매력이 어떻게 상대에 대한 경계심을 약화시키는지, 철학적 언어가 어떻게 위험한 인물을 특별한 사람처럼 보이게 만드는지를 보여줍니다.

    질은 처음에는 에이브를 평범한 교수들과 다른 깊이 있는 인물로 바라봅니다. 그는 삶에 절망해 있고, 세상의 위선을 꿰뚫어보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자신이 이해하기 어려운 고통을 품고 있다는 점도 매력으로 작용합니다. 하지만 영화가 진행될수록 질의 시선은 달라집니다. 에이브의 말과 행동 사이에 균열이 생기고, 그가 단순히 상처받은 지식인이 아니라 자신의 논리를 위해 현실을 왜곡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관객도 질과 비슷한 과정을 거칩니다. 처음에는 에이브의 냉소와 철학적 태도를 흥미롭게 바라보지만, 점차 그의 사고방식에서 위험성을 느끼게 됩니다.

    우디 앨런은 이 과정을 무겁고 어두운 범죄극으로만 연출하지 않습니다. 영화에는 밝은 음악과 한가로운 대학 풍경, 일상적인 대화가 계속 등장합니다. 살인 계획이 진행되는 동안에도 화면의 분위기는 지나치게 긴장되지 않습니다. 이러한 연출은 오히려 불편함을 키웁니다. 끔찍한 일이 평범한 일상 안에서 너무 자연스럽게 진행되기 때문입니다. 에이브 역시 범죄를 준비하면서 특별히 광기 어린 모습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는 산책하고, 식사하고, 학생들과 대화하며 자신의 계획을 실행합니다. 악이 반드시 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주는 방식입니다.

    이 영화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을 떠올리게 하는 이유도 작가주의적 관심과 연결됩니다. ‘죄와 벌’의 라스콜니코프는 특별한 인간이라면 도덕적 법칙을 넘어설 수 있다고 믿습니다. 그는 자신의 범죄가 단순한 욕망이 아니라 더 큰 목적을 위한 행동이라고 생각합니다. 에이브 역시 부도덕한 판사를 제거하는 것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믿습니다. 두 인물 모두 자신의 지성과 판단력을 근거로 일반적인 도덕 기준의 예외가 되려 합니다.

    다만 ‘죄와 벌’이 범죄 이후의 죄책감과 정신적 붕괴를 깊이 추적한다면, ‘이레셔널 맨’은 범죄가 에이브에게 생기를 되찾아주는 역설에 집중합니다. 에이브는 살인을 결심한 뒤 오히려 건강해지고 적극적으로 변합니다. 삶에 아무런 의미를 느끼지 못하던 인물이 타인의 죽음을 계획하면서 목적을 발견한다는 설정은 매우 불편합니다. 그러나 바로 그 불편함이 영화의 핵심입니다. 사람은 반드시 선한 일을 통해서만 삶의 의미를 느끼는 것이 아니며, 의미를 찾았다는 감정 자체가 도덕적 정당성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호아킨 피닉스의 연기도 작가주의적 분위기를 강화합니다. 그는 에이브를 단순한 악인으로 연기하지 않습니다. 몸은 무겁고 표정은 지쳐 있으며, 말할 때는 자신이 이미 세상의 모든 답을 알고 있다는 듯한 냉소가 묻어납니다. 하지만 살인을 계획한 뒤에는 움직임과 표정이 달라집니다. 그 변화가 과장되지 않기 때문에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집니다. 에이브에게 필요한 것은 사랑이나 치료, 새로운 직업이 아니라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극단적인 사건이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엠마 스톤이 연기한 질은 영화에서 관객의 판단을 대신하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처음에는 에이브의 철학에 매료되지만, 이후에는 그의 행동을 의심하고 진실을 추적합니다. 감정적으로 가까운 사람을 의심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자신이 존경했던 사람이 위험한 인물일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순간, 자신의 판단까지 부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질이 진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에이브의 자기합리화와 정반대의 움직임을 보여줍니다. 에이브는 현실을 자신의 믿음에 맞추지만, 질은 자신의 믿음을 현실에 맞춰 수정합니다.

    반면 리타는 에이브의 또 다른 관계 방식을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결혼생활에 불만을 느끼며 에이브와 관계를 맺지만, 에이브의 내면에 깊이 접근하지는 못합니다. 질이 에이브의 철학적 세계에 매료된다면, 리타는 그의 불안정함과 외로움에 반응합니다. 두 여성의 존재는 에이브가 타인의 관심을 통해 자신의 공허함을 채우려 한다는 점을 드러냅니다. 하지만 어떤 관계도 그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개인적으로 ‘이레셔널 맨’은 강한 반전과 빠른 전개를 기대하면 다소 심심하게 느껴질 수 있는 영화였습니다. 사건 자체는 충격적이지만 영화는 긴장감을 극대화하기보다 인물의 사고방식을 관찰하는 데 시간을 사용합니다. 결말도 비교적 갑작스럽게 찾아옵니다. 그러나 이러한 밋밋함은 단점인 동시에 우디 앨런식 작가주의의 특징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범죄의 스릴보다 인간이 자신의 욕망을 어떻게 철학적 언어로 꾸미는지에 더 관심을 둡니다.

    결국 이 영화의 작가주의는 감독의 이름이나 촬영 기법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지적인 사람이 반드시 도덕적인 것은 아니라는 점, 철학이 삶을 구원하기보다 욕망을 합리화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점, 인간은 자신의 모순을 알고도 쉽게 바뀌지 않는다는 점이 작품 전체에 반복됩니다. ‘이레셔널 맨’은 화려한 사건보다 불안한 인간 내면을 들여다보는 영화이며, 그 불편한 시선이 우디 앨런의 세계관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줍니다.

    철학적 독선이 개인의 확신을 위험한 정의로 바꾸는 순간

    철학적 독선은 자신의 사고와 판단이 다른 사람보다 우월하다고 믿고, 그 믿음을 근거로 타인의 삶까지 결정하려는 태도를 의미합니다. 단순히 의견이 강하거나 자신감이 있다는 것과는 다릅니다. 독선은 자신의 판단이 틀릴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으며, 반대 의견을 검토할 필요조차 없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이레셔널 맨’의 에이브는 철학적 독선이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만들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에이브는 오랫동안 철학을 공부하고 가르쳐왔습니다. 그는 도덕과 자유의지, 실존과 책임에 관한 수많은 이론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식은 그를 겸손하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이 평범한 사람들보다 복잡한 도덕 문제를 정확히 판단할 수 있다는 확신을 키웁니다. 그는 부도덕한 판사를 제거하면 한 가족이 구원받고 사회가 조금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법을 어긴다는 사실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법과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에 자신이 직접 정의를 실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에이브가 판사의 유죄를 입증할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입니다. 그는 사건을 조사하지 않았고, 당사자들의 이야기를 모두 듣지 않았으며, 판사가 실제로 어떤 판결을 내렸는지도 정확히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우연히 들은 대화를 바탕으로 한 사람을 악인으로 규정하고 사형을 선고한 셈입니다. 이는 정의가 아니라 개인적 심판입니다. 정의는 절차와 검증, 책임을 필요로 하지만 에이브의 행동에는 그 어떤 과정도 없습니다.

    철학적 독선은 대개 선한 명분을 내세웁니다. 자신을 위한 행동이 아니라 조직과 사회, 타인을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더 위험합니다. 개인적인 욕망이라고 인정하면 스스로를 통제할 가능성이 있지만, 정의를 위한 행동이라고 믿으면 어떤 수단도 정당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이브는 판사를 죽이는 일이 자신의 이익을 위한 것이 아니므로 도덕적으로 순수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가 얻는 가장 큰 이익은 삶의 의미와 활력입니다. 타인을 구한다는 명분 아래 자신의 공허함을 해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지점에서 도덕적 이탈이라는 개념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도덕적 이탈은 사람이 잘못된 행동을 하면서도 죄책감을 느끼지 않도록 스스로의 도덕 기준을 일시적으로 분리하는 심리 과정입니다. 행동을 더 높은 목적과 연결하거나, 피해자를 나쁜 사람으로 규정하거나, 책임을 상황과 타인에게 돌리는 방식으로 나타납니다. 에이브는 자신이 살인을 저지르는 것이 아니라 부패한 존재를 제거하는 것이라고 해석합니다. 판사를 한 명의 인간이 아니라 사회에 해를 끼치는 장애물로 바라봄으로써 죄책감을 줄입니다.

    직장생활에서도 철학적 독선과 비슷한 태도를 종종 발견할 수 있습니다. 조직의 성과를 높여야 한다는 이유로 구성원의 의견을 무시하거나, 회사의 미래를 위해 일부 직원의 희생은 불가피하다고 주장하는 경우입니다. 물론 모든 결정을 구성원 전체의 동의로 내릴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어려운 결단이 필요하고, 누군가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러나 결정권자가 자신의 판단을 절대적인 것으로 여기고 피해를 입는 사람의 목소리를 무시한다면 그것은 리더십이 아니라 독선에 가까워집니다.

    제가 경험했던 업무 개편 역시 비슷한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제안자는 조직의 효율을 높이겠다는 진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개인적인 이익을 얻으려는 의도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의 방법만이 정답이라고 믿으면서 현장 직원들의 의견을 듣지 않았습니다. 실제 업무를 수행하는 사람들이 불편함을 이야기해도 변화에 저항하는 태도로 받아들였습니다. 결과적으로 업무 부담이 늘고 오류가 많아졌지만, 그는 계획의 문제보다 직원들의 실행 능력을 탓했습니다.

    이 경험을 통해 선한 의도가 반드시 좋은 결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배웠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의도가 선하다고 확신할수록 결과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기 쉬울 수 있습니다. 나는 조직을 위해 결정했으므로 잘못이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판단의 도덕성은 의도만이 아니라 과정과 결과, 피해를 함께 살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목표를 가지고 있어도 다른 사람의 선택권을 빼앗고, 반대 의견을 차단하며, 실패의 책임을 타인에게 돌린다면 정당한 행동이라고 보기 어렵습니다.

    에이브가 살인 이후 삶의 의욕을 되찾는 설정은 철학적 독선의 중독성을 보여줍니다. 그는 자신이 세상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는 감각을 얻습니다. 이전에는 철학을 가르치면서도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고 느꼈지만, 한 사람의 죽음을 계획하고 실행한 뒤에는 자신이 행동하는 인간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이 강렬한 통제감은 그에게 새로운 삶의 의미를 제공합니다. 그래서 자신의 행동이 잘못됐다는 증거가 나타나도 멈추기 어렵습니다.

    잘못된 선택을 통해 자신감을 되찾은 사람은 그 선택을 부정하기 어렵습니다. 행동이 잘못됐다고 인정하는 순간, 새롭게 얻은 삶의 의미까지 무너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에이브가 자신의 범죄를 감추기 위해 더 위험한 선택을 하게 되는 것도 이와 관련이 있습니다. 처음에는 한 사람을 제거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믿었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질이 위협이 되자 그녀마저 제거하려 합니다. 사회 정의를 위한 행동이라는 초기 명분은 사라지고, 자신의 안전을 지키기 위한 범죄만 남습니다.

    이 변화는 독선이 어떻게 확장되는지를 보여줍니다. 처음에는 특별한 상황에서 한 번만 예외를 허용했다고 생각하지만, 그 예외를 지키기 위해 또 다른 예외가 필요해집니다. 한 번 도덕적 경계를 넘은 사람은 이전 행동을 감추기 위해 더 큰 잘못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에이브의 철학적 논리는 결국 정의를 실현하는 도구가 아니라 자신의 범죄를 보호하는 방어막이 됩니다.

    철학적 독선을 막기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자신의 판단을 의심할 수 있는 태도입니다. 지식이 많고 경험이 풍부하더라도 모든 정보를 알 수는 없습니다. 특히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미치는 결정을 내릴 때는 내가 보지 못한 사실이 있을 수 있다는 전제를 가져야 합니다. 반대 의견을 무지나 방해로 해석하기보다 자신의 판단을 검토할 기회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좋은 의도만 강조하지 말고 실제로 누가 피해를 입는지, 그 피해를 감수할 권한이 자신에게 있는지도 질문해야 합니다.

    ‘이레셔널 맨’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히 살인이 정당화될 수 있는가에 머무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자신의 판단을 얼마나 쉽게 절대화하는지, 선한 목적이라는 이유로 다른 사람의 목소리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보게 합니다. 에이브는 극단적인 인물이지만 그의 사고 구조는 현실과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누구나 자신의 경험과 지식을 근거로 다른 사람보다 옳다고 믿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결국 철학적 독선의 가장 큰 위험은 자신을 악인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습니다. 에이브는 끝까지 자신이 특별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정의를 위해 행동한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공허함과 욕망을 위해 타인의 생명을 이용했습니다. 영화는 목적이 선하다고 해서 과정이 정당해지는 것은 아니며, 확신이 강하다고 해서 판단이 옳아지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진정으로 책임 있는 사람은 자신의 결론을 강하게 밀어붙이는 사람이 아니라, 그 결론이 틀릴 가능성을 끝까지 열어두는 사람일 것입니다.


    참고: https://youtu.be/ot8ijV_K3g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