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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널' 리뷰(희망, 사회 비판, 촬영 비하인드)

yohaha3640 2026. 8. 19. 21:30

목차


    터널 안에 갇혀 있다고 상상해 보신 적 있으십니까. 빛도 없고, 소리도 없고, 구조가 언제 올지도 모르는 그 상황에서 나라면 어떻게 버텼을까. 저는 영화 터널을 보면서 내내 그 생각을 떨쳐내지 못했습니다. 극한 생존, 사회 구조의 민낯, 그리고 희망이라는 감정이 동시에 한 화면 안에 담긴 영화였습니다.

     

    영화 '터널'

    희망이 버티게 하는 힘

    영화 ‘터널’은 자동차 영업대리점 과장 정수가 퇴근길에 무너진 터널 안에 갇히면서 시작됩니다. 평소처럼 주유소에 들렀다가 딸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집으로 향하던 평범한 하루였습니다. 그러나 새로 개통한 터널이 순식간에 무너지면서 정수의 일상도 함께 멈춰 버립니다. 그에게 남은 것은 휴대전화와 생수 두 병, 딸에게 줄 생일 케이크뿐입니다. 구조대가 언제 도착할지 알 수 없고 추가 붕괴가 일어날 가능성도 있는 상황에서 정수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습니다.

    처음에는 정수가 물을 조금씩 나누어 마시고 케이크를 아껴 먹는 장면을 단순한 생존 과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를 다시 보니 그 행동은 절망에 휩쓸리지 않으려는 나름의 질서처럼 보였습니다. 물병에 눈금을 표시해 하루에 마실 양을 정하고, 휴대전화의 배터리가 닳지 않도록 통화를 줄이는 모습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일을 찾는 과정입니다. 바깥 상황은 정수의 뜻대로 움직이지 않지만, 적어도 지금 가진 물과 음식은 스스로 관리할 수 있습니다. 정수는 거창한 방법으로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 그날 할 수 있는 일을 하나씩 이어 가며 버팁니다.

    이 장면을 보며 학창 시절 중요한 시험을 준비했던 경험이 떠올랐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공부했다고 생각했지만 성적은 기대만큼 오르지 않았고, 주변 친구들은 저보다 훨씬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문제집을 펼쳐도 집중되지 않았고, 지금 다시 공부한다고 해서 결과가 달라질지 의심스러웠습니다. 당시 제가 느꼈던 막막함은 출구가 보이지 않는 터널과 비슷했습니다. 어디까지 가야 끝나는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이 공부 자체보다 더 힘들게 느껴졌습니다.

    그때 선생님께서 결과를 한꺼번에 바꾸려고 하지 말고 오늘 해야 할 분량부터 끝내 보라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처음에는 너무 평범한 조언이라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하루에 풀 문제와 외울 내용을 작게 나누자 다시 책상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당장 성적이 크게 오르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아무것도 하지 못한 채 불안해하는 시간은 줄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를 버티게 한 것은 시험에서 반드시 좋은 결과를 얻을 것이라는 확신이 아니었습니다. 오늘 정한 분량만큼은 해낼 수 있다는 작은 믿음이었습니다.

    영화 속 정수에게 구조대장 대경의 무전도 비슷한 역할을 합니다. 대경은 정확한 구조 날짜를 장담하지 못하지만, 정수에게 계속 말을 걸고 그가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려 줍니다. 정수는 휴대전화 너머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를 통해 자신을 구하려는 사람이 바깥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합니다. 사람은 힘든 상황에 놓이면 모든 문제를 혼자 견디고 있다고 느끼기 쉽습니다. 이때 누군가가 상황을 해결해 주지 못하더라도 내 이야기를 듣고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다시 버틸 이유가 생기기도 합니다.

    저 역시 시험을 대신 치러 줄 수 없는 선생님의 한마디에서 힘을 얻었습니다. 가족과 친구들의 격려도 문제를 직접 해결해 준 것은 아니지만, 혼자 뒤처지고 있다는 생각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습니다. 그 경험 이후 어려운 일을 겪는 사람에게 성급하게 해결책부터 말하기보다 먼저 이야기를 들어 주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상대방에게 필요한 것이 완벽한 답이 아니라 포기하지 않도록 붙잡아 주는 목소리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터널’에서 보여 주는 희망은 모든 일이 잘될 것이라고 믿는 막연한 낙관과는 다릅니다. 정수는 구조 작업이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고 자신을 포기하자는 여론이 커지는 순간까지 겪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물을 찾고, 몸을 보호하고, 살아 있다는 신호를 보내기 위해 움직입니다. 상황이 나아질 것이라는 보장이 있어서가 아니라 살아 있기 때문에 할 수 있는 행동을 계속하는 것입니다. 이 태도는 회복탄력성(Resilience)이라는 개념과도 연결됩니다. 회복탄력성이란 역경이나 극심한 스트레스를 경험한 뒤에도 다시 적응하고 일상을 회복해 나가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이는 어려움을 전혀 느끼지 않는 강한 마음이라기보다, 무너진 상황에서 다시 할 수 있는 일을 찾아가는 힘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영화가 보여 주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면 희망은 남아 있다”는 메시지에 동의합니다. 다만 희망만 있으면 어떤 재난도 극복할 수 있다는 식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정수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개인적인 의지만이 아니라 대경을 비롯한 구조대원들의 노력과 가족의 기다림이 함께 있었기 때문입니다. 생존을 개인의 정신력만으로 설명하면 구조 체계와 사회의 책임이 가려질 수 있습니다. 영화 속 희망은 혼자 만들어 낸 기적이 아니라 안과 밖의 사람들이 서로를 포기하지 않았기에 유지될 수 있었던 힘입니다.

    저에게 ‘터널’은 힘든 순간에 무조건 긍정적으로 생각하라고 말하는 영화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앞이 보이지 않을 때는 먼 출구만 바라보기보다 오늘 할 수 있는 한 가지를 찾으라고 말하는 작품에 가까웠습니다. 정수가 한 모금의 물과 한 번의 무전을 붙잡고 버틴 것처럼 현실에서도 작은 행동과 짧은 격려가 사람을 다시 움직이게 할 수 있습니다. 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출구가 존재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이 ‘터널’이 보여 준 가장 현실적인 희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회 비판이 향한 곳

    ‘터널’은 한 남자의 생존만 보여 주는 재난영화가 아닙니다. 정수가 무너진 터널 안에서 살아남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동안 바깥에서는 사고를 둘러싼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정부 관계자는 현장에 도착해 피해자의 상태를 확인하기보다 카메라 앞에서 대책을 발표하고, 언론은 정수의 생존 여부를 자극적인 뉴스로 전달합니다. 구조 작업이 길어지자 사람들의 관심은 한 사람을 어떻게 구할 것인가에서 구조에 들어가는 비용이 적절한가로 이동합니다.

    특히 정수와 기자의 전화 통화 장면은 재난을 바라보는 외부의 시선을 선명하게 보여 줍니다. 정수에게 전화는 구조대 및 가족과 연결되는 중요한 생명선입니다. 배터리 하나가 생존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황인데도 기자는 정수에게 전화를 걸어 인터뷰를 시도하고, 동의를 제대로 구하지 않은 채 통화 내용을 방송에 내보냅니다. 기자에게는 단독 보도가 될 수 있지만 정수에게는 귀중한 배터리와 감정을 소모하게 만드는 행동입니다. 피해자의 절박한 상황이 누군가에게는 관심을 끌기 위한 콘텐츠가 된다는 사실이 불편하게 다가왔습니다.

    여기에는 미디어 프레이밍(Media Framing)이라는 개념을 적용해 볼 수 있습니다. 미디어 프레이밍은 언론이 사건의 어떤 부분을 선택하고 강조하느냐에 따라 대중이 그 사건을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현상을 말합니다. 처음에는 정수가 반드시 구조되어야 할 피해자로 다뤄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막대한 비용을 발생시키는 존재처럼 묘사됩니다. 같은 사람과 같은 사고인데도 보도의 초점이 달라지자 이를 바라보는 여론도 변합니다. 영화는 사람의 생명이 뉴스의 구성 방식에 따라 동정의 대상에서 부담스러운 존재로 바뀔 수 있다는 점을 풍자합니다.

    저도 재난 관련 뉴스를 보면서 비슷한 감정을 느낀 적이 있습니다. 사고가 발생한 직후에는 피해자를 걱정하는 보도가 쏟아지지만, 시간이 지나면 사고 원인에 대한 추측이나 유가족의 반응이 반복적으로 노출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현장의 구체적인 어려움보다 누가 잘못했는지, 어떤 장면이 더 충격적인지에 초점이 맞춰지는 모습을 보면 정보를 전달하는 것과 고통을 소비하는 것의 경계가 어디인지 고민하게 됩니다. 영화 속 기자의 행동이 과장처럼 보이면서도 완전히 낯설게 느껴지지 않았던 이유입니다.

    정부와 시공사를 바라보는 영화의 시선도 날카롭습니다. 개통된 지 얼마 되지 않은 터널이 무너졌지만 관계자들은 책임의 소재부터 계산합니다. 구조 현장에 필요한 정확한 도면은 제대로 준비되어 있지 않고, 잘못된 정보로 인해 구조 작업은 엉뚱한 방향으로 진행됩니다. 피해자를 구하기 위해 존재해야 할 시스템이 실제 상황에서는 체면과 책임 회피에 묶여 제대로 움직이지 못합니다. ‘터널’은 재난 자체도 위험하지만, 부실한 준비와 뒤늦은 대응이 피해를 더욱 키울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러한 사회비판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는 영화가 모든 장면을 무겁게만 끌고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관계자들의 보여주기식 행동과 앞뒤가 맞지 않는 발표는 블랙코미디 형식으로 표현됩니다. 블랙코미디(Black Comedy)란 심각하거나 비극적인 상황을 풍자와 냉소를 통해 보여 주는 방식입니다. 관객은 황당한 행동을 보며 웃게 되지만, 그 상황이 현실에서도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는 생각에 웃음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씨네21도 이 작품을 재난에 대응하는 사회의 몰상식한 태도를 블랙코미디로 표현한 영화로 평가했습니다(출처: 씨네21).

    저는 영화가 피해자보다 여론과 비용을 먼저 생각하는 사회를 비판한 점에 동의합니다. 사람의 생명을 구조하는 문제는 관심도나 경제성만으로 결정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구조가 장기화되었다는 이유로 생존 가능성을 쉽게 단정하거나, 현장 밖의 사람들이 피해자에게 포기를 요구하는 모습은 분명 비판받아야 합니다. 대경이 끝까지 정수를 구하려 하는 태도가 특별하게 보이는 것도 원래 지켜져야 할 원칙이 주변의 계산 때문에 흔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만 정부 관계자와 언론인이 대부분 무능하거나 이기적인 인물로 그려진 부분에는 반박할 여지도 있습니다. 실제 재난 현장에서는 추가 붕괴 가능성과 구조대원의 안전, 장비의 한계, 지형과 날씨 등 여러 조건을 동시에 고려해야 합니다. 구조가 늦어졌다는 결과만으로 현장의 모든 판단을 무책임하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구조대원 역시 위험을 감수하는 사람이며, 또 다른 피해를 막기 위해 작업을 중단하거나 방식을 변경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사회비판을 선명하게 전달하려는 과정에서 실제 구조 현장의 복잡성이 다소 단순화된 점은 아쉽습니다.

    그럼에도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합니다. 재난이 발생했을 때 우리는 피해자를 중심에 놓고 판단하고 있는지, 아니면 사고를 구경하고 평가하는 위치에만 머무르고 있는지를 묻기 때문입니다. 경향신문의 당시 리뷰 역시 이 작품이 정수의 생존 투쟁과 함께 재난을 둘러싼 사회의 모습을 비판적으로 담아냈다고 평가했습니다(출처: 경향신문). 저도 이 영화를 본 뒤 재난 보도를 접할 때 자극적인 장면보다 피해자에게 실제로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먼저 생각하려고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터널’의 사회비판은 특정한 기관만을 향한 것이 아니라 재난을 너무 쉽게 소비하고 잊어버리는 우리 모두에게 향해 있다고 생각합니다.

    촬영 비하인드의 현실감

    영화 ‘터널’이 관객에게 답답함과 공포를 생생하게 전달할 수 있었던 데에는 실제 공간처럼 구현된 촬영 환경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영화를 보는 동안 정수가 갇힌 장소가 세트라는 생각이 쉽게 들지 않습니다. 부서진 콘크리트와 뒤엉킨 철근, 자동차를 짓누르는 돌덩이와 화면을 가득 채우는 먼지가 실제 붕괴 현장처럼 표현되기 때문입니다. 제작진은 좁고 어두운 공간에서 한 인물의 생존을 오랫동안 보여 줘야 했기 때문에 화려한 장면보다 공간의 질감과 작은 변화에 집중했습니다.

    촬영 장소에 대해서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영화에 등장하는 터널 외부와 진입로는 오랫동안 사용되지 않았던 충북 옥천의 옛 터널 주변을 정비해 촬영했습니다. 제작진은 낡은 공간을 개통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터널처럼 보이게 만들기 위해 약 200m의 아스팔트 도로를 새로 깔고 조명과 환풍기, 가드레일 등을 설치했습니다. 순제작비 약 80억 원 가운데 10억 원가량이 도로 조성과 터널 보수에 사용됐다고 전해집니다.

    그러나 정수가 갇혀 있는 붕괴된 터널 내부 장면까지 모두 옥천터널에서 촬영한 것은 아닙니다. 사고가 일어나기 전 정수가 자동차를 운전해 터널을 통과하는 장면은 강원도 영월의 실제 터널에서 촬영했고, 무너진 내부 공간은 경기도 안성 DIMA종합촬영소에 별도의 세트를 만들어 촬영했습니다. 터널 외부, 정상적으로 운행하는 내부, 붕괴된 공간을 서로 다른 장소에서 촬영한 뒤 하나의 터널처럼 연결한 것입니다. 이 과정을 알고 다시 보면 장소가 바뀌는데도 빛과 색감, 구조가 자연스럽게 이어진다는 점이 더욱 흥미롭게 느껴집니다(출처: 중앙일보 매거진M).

    붕괴된 터널의 분진을 표현한 재료도 인상적입니다. 제작진은 배우와 스태프가 반복적으로 먼지에 노출되는 점을 고려해 콩가루와 숯가루, 미숫가루 등을 혼합하여 사용했습니다. 화면에서는 콘크리트 가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비교적 안전한 식재료를 활용한 것입니다. 그렇다고 촬영이 편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정우는 촬영 과정에서 가루를 계속 뒤집어쓰고 잔기침을 하게 되어 촬영 후 폐 CT 검사까지 받았다고 밝혔습니다. 인체에 위험하지 않은 재료를 선택했더라도 좁은 공간에서 장기간 분진 장면을 반복하는 일은 배우에게 상당한 부담이었을 것입니다.

    저는 이 사실을 알고 난 뒤 정수가 먼지를 털어 내거나 힘겹게 숨을 쉬는 장면을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모두 연기와 특수효과라고 생각했지만, 실제 촬영장에서도 배우가 답답한 공기와 가루를 견뎌야 했다는 점을 알고 나니 인물의 고통이 더욱 현실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영화의 리얼리티는 배우가 위험을 무릅쓰는 데서만 만들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위험한 재료를 피하면서도 화면에서는 실제처럼 보이게 만드는 미술과 특수효과의 설계가 함께 필요합니다.

    정수와 아내 세현이 전화로 대화하는 장면에도 특별한 촬영 방식이 사용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상대 배우가 없는 장면에서는 스태프가 대사를 읽어 주거나 녹음된 음성을 활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터널’의 통화 장면에서는 배우들이 실제로 전화 연결을 한 상태에서 연기를 맞췄습니다. 배두나가 해외에서 다른 작품을 촬영하고 있을 때도 시간에 맞춰 하정우와 통화했고, 배두나의 촬영 때에는 하정우가 전화를 받아 상대 연기를 해 주었습니다. 같은 공간에 있지 않아도 실제 대화를 주고받았기 때문에 목소리 사이의 간격과 감정적인 반응이 더 자연스럽게 표현될 수 있었습니다.

    정수와 함께 터널에 갇히는 강아지 탱이도 한 마리가 모든 장면을 연기한 것은 아닙니다. 곰탱이와 밤탱이라는 퍼그 두 마리가 장면에 따라 번갈아 등장했습니다. 촬영 전부터 동물 전문 트레이너와 훈련했고, 어두운 공간과 자동차 내부의 냄새에 놀라지 않도록 폐차를 이용한 적응 훈련도 진행했습니다. 화면에서는 정수와 탱이의 만남이 우연처럼 보이지만, 자연스러운 행동 하나를 담기 위해 촬영 전부터 세심한 준비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구조 장면 역시 실제 재난 사례를 참고해 설계되었습니다. 제작진은 해외의 붕괴 사고와 구조 관련 다큐멘터리를 조사했고, 대경이 지하로 내려갈 때 사용하는 노란색 구조 캡슐은 2010년 칠레 광산 매몰 사고 당시 사용된 구조 장비를 참고해 제작했습니다. 실제 사례를 그대로 재현한 것은 아니지만 현실에 존재했던 구조 방식을 영화의 상황에 맞게 변형하면서 장면의 설득력을 높였습니다. 터널 바깥을 넓게 보여 주는 항공 촬영과 여러 대의 드론이 동시에 움직이는 장면도 폐쇄된 내부 공간과 대비를 이루며 구조 현장의 규모를 보여 줍니다.

    이러한 촬영비하인드를 살펴보면 프로덕션 디자인(Production Design)이 영화에서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습니다. 프로덕션 디자인은 단순히 세트를 아름답게 꾸미는 작업이 아니라 인물이 살아가는 공간과 작품의 분위기를 시각적으로 설계하는 과정입니다. ‘터널’에서는 화려한 공간보다 무너진 콘크리트의 질감, 조금씩 줄어드는 물, 어두워지는 휴대전화 화면과 자동차 내부의 변화가 중요합니다. 공간이 점점 정수의 생활 장소로 변하는 모습을 통해 시간의 흐름과 생존의 어려움을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저는 촬영 뒷이야기를 알고 나면 영화의 몰입감이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느끼게 됩니다. 실제 터널을 정비하고 별도의 붕괴 세트를 만들며, 배우들의 통화를 실시간으로 연결하고 동물까지 공간에 적응시키는 과정이 모여 하나의 현실적인 재난 현장을 완성했습니다. 영화의 기술은 관객에게 눈에 띄기 위해 존재하기보다 기술이라는 사실을 잊게 만들 때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터널’의 촬영비하인드는 화면에 보이는 두 시간 남짓한 이야기를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과 시간이 움직였는지를 보여 줍니다. 영화를 다시 본다면 정수의 연기뿐 아니라 터널 벽과 소품, 분진, 조명처럼 처음에는 지나쳤던 요소까지 함께 살펴보길 바랍니다.


    참고: https://youtu.be/VkH4IeKZZf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