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 첫날, 저는 교실 문 앞에서 한참을 서 있었습니다. 안에 있는 아이들이 저를 어떻게 볼지, 괜히 먼저 말을 걸었다가 무시당하는 건 아닐지, 머릿속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만 계속 돌아갔습니다. 영화 버드 박스를 보다가 그 기억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맬러리가 눈을 가린 채 아이들의 손을 잡고 강을 헤쳐 나가는 장면에서, 앞이 보이지 않는 두려움을 안고도 한 걸음씩 나아가야 했던 그 시절의 제가 겹쳐 보였습니다. 보이지 않을수록 커지는 공포 심리영화 에서 가장 인상적인 설정은 정체를 알 수 없는 존재를 바라본 사람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인 공포 영화에서는 괴물의 흉측한 모습이나 갑작스럽게 등장하는 장면을 통해 관객을 놀라게 합니다. 그러나 이 작품은 위협의 실체를 화면에 거의 보여주지 않..
두려움이 없는 사람이 강한 걸까요, 아니면 두려우면서도 멈추지 않는 사람이 강한 걸까요? 영화 헌팅 엠마를 보고 나서 저는 이 질문을 한참 붙들고 앉아 있었습니다. 평범한 교사가 광활한 황무지에서 무장 범죄 조직을 상대로 살아남는 이야기인데, 단순한 액션 영화로 보기엔 뭔가 다른 결이 있었습니다.배경과 맥락, 극한 상황이 만들어지는 구조영화 ‘헌팅 엠마(Hunting Emma)’는 남아프리카공화국의 광활한 자연을 배경으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비포장도로와 드문드문 놓인 도로 표지판, 사람의 흔적조차 쉽게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풍경은 단순히 화면을 아름답게 만들기 위한 연출이 아닙니다. 이 공간 자체가 주인공을 고립시키는 거대한 장치이자, 영화 전체의 긴장감을 만들어내는 핵심 요소로 작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