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들과 다르다는 느낌이 드는 순간이 있습니다. 발표 자리에서 목소리가 떨리고, 잘 준비했는데도 머릿속이 하얘지는 그 순간. 저도 학창 시절 그 감각을 꽤 오래 안고 살았습니다. 2013년 영화 맨 오브 스틸을 보면서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는데, 클라크 켄트가 자신의 능력을 숨기며 살아가는 모습이 묘하게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정체성: 다름을 받아들이는 선택영화 「맨 오브 스틸」에서 클라크 켄트가 가장 오랫동안 고민하는 문제는 강한 적을 물리치는 방법이 아닙니다. 자신이 누구이며, 어떤 존재로 살아가야 하는지를 결정하는 일입니다. 그는 지구에서 평범한 인간의 모습으로 성장했지만 실제로는 멸망한 크립톤 행성에서 온 외계인이었습니다. 인간보다 훨씬 강한 힘과 빠른 속도, 뛰어난 감각을 지녔지만 어린 클라크에..
발표 전날 밤, 저는 진짜로 아픈 척할 방법을 고민했습니다. 메가로돈을 보고 나서 그때가 떠올랐습니다. 거대한 상어 앞에 선 주인공의 표정이 교단 앞에 서던 제 모습과 겹쳐 보였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에 맞서는 사람의 이야기는, 어디서 봐도 결국 같은 모양을 하고 있습니다. 두려움을 넘어서는 용기영화 「메가로돈」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거대한 상어의 크기가 아니었습니다. 주인공 조나스가 오랫동안 마음속에 품고 살아온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는 과거 구조 작전에서 동료들을 모두 구하지 못했고, 당시 자신이 목격한 정체불명의 거대 생명체에 관해서도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결국 조나스는 죄책감과 불신 속에서 바다를 떠나게 됩니다. 몸은 위험한 현장에서 벗어났지만, 마음만큼은 여전히 그날의 심해에 ..
저도 처음엔 3일짜리 사랑 이야기가 얼마나 깊이 있을까 반신반의했습니다. 짧은 만남이 사람의 삶에 진짜 흔적을 남길 수 있는지, 영화관을 나오면서도 확신이 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며칠이 지나도 애나의 표정이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더군요.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는 그런 작품이었습니다. 짧은 만남이 남긴 변화사람을 깊이 이해하려면 오랜 시간을 함께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물론 함께한 시간이 길수록 상대방의 성격과 습관을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어떤 만남은 시간의 길이와 상관없이 마음속에 오래 남기도 합니다. 김태용 감독의 영화 「만추」는 바로 이러한 짧은 만남의 특별함을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영화 속 애나와 훈이 함께한 시간은 단 3일에 불과하지만, 두 사람은 그동안 다른 누구에게도 ..
솔직히 고백하자면, 저는 이 영화를 처음 봤을 때 단순한 액션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끝나고 나서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습니다. 레옹과 마틸다가 서로에게 기대며 변해가는 과정이 생각보다 훨씬 깊은 울림을 남겼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그 감정의 기록이자, 이 영화를 둘러싼 몇 가지 불편한 질문들을 같이 들여다보는 자리입니다. 복수 앞에 선 마틸다뤽 베송 감독의 1994년 영화 「레옹」은 가족을 잃은 소녀 마틸다가 복수를 꿈꾸면서 시작됩니다. 마틸다의 아버지는 마약단속국 요원 스탠스필드가 맡긴 마약을 빼돌리고, 이를 알게 된 스탠스필드는 부하들을 이끌고 마틸다의 가족을 몰살합니다. 심부름을 다녀오던 중 가까스로 화를 피한 마틸다는 가족이 살해된 사실을 알아차리고도 집으로 들어가지 못합니다. 대신 같..
조윤 혼자서 마을 하나를 통째로 집어삼킵니다. 땅을 빼앗고, 사람을 노비로 만들고, 이의를 제기하는 자는 가족까지 해칩니다. 영화 '군도'를 처음 봤을 때 제가 받은 충격은 단순한 오락 영화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어디선가 본 듯한 구조였거든요. 배경과 맥락, 신분의 벽영화 ‘군도: 민란의 시대’의 배경은 철종 13년인 1862년입니다. 당시 백성들은 계속된 자연재해와 기근뿐만 아니라 탐관오리의 횡포까지 견뎌야 했습니다. 영화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단순한 배경으로만 사용하지 않습니다. 태어날 때 정해진 신분에 따라 사람의 가치와 삶의 가능성이 달라지는 사회에서 폭력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반복되는지를 보여주는 중요한 장치로 활용합니다. 한국영상자료원의 작품 소개에서도 이 작품은 양반과 탐관오리의 착취가 극..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시기, 저는 집에서 '월드워Z'를 다시 꺼내 봤습니다. 처음 봤을 때는 그냥 액션 블록버스터로 소비했는데, 팬데믹을 직접 겪고 나서 다시 보니 느낌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영화 속 바이러스 확산 속도와 사람들의 반응이 낯설지 않았고, 어떤 장면에서는 소름이 돋기도 했습니다. 감염병의 속도보다 두려웠던 불확실성영화 ‘월드워Z’에서 가장 강렬하게 다가오는 설정은 좀비 바이러스의 압도적인 전파 속도입니다. 감염된 사람은 불과 몇 초 만에 다른 존재로 변하고, 한 명에게서 시작된 감염은 순식간에 거리와 도시 전체로 확산됩니다. 현실의 감염병과 직접 비교하기에는 과장된 장면이지만, 감염이 시작된 뒤 사회가 얼마나 빠르게 혼란에 빠질 수 있는지를 시각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상당히 인상적이었습..
조별 과제를 하던 날이 아직도 기억납니다. 선생님은 자유롭게 조를 구성하라고 했지만, 교실 안에서 보이지 않는 계급이 만들어지는 데는 채 5분도 걸리지 않았습니다. 설국열차를 보면서 그 장면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 열차 안이나 교실 안이나, 공간이 달라도 불평등이 작동하는 방식은 놀랍도록 비슷했습니다. 계급구조, 칸이 나눈 삶처음 ‘설국열차’를 보기 전에는 얼어붙은 지구를 달리는 열차 안에서 생존자들이 벌이는 SF 액션 영화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니 가장 오래 남은 것은 화려한 전투 장면이 아니라 열차를 가로로 나눈 수많은 문이었습니다. 한 칸의 문이 열릴 때마다 사람들의 옷과 음식, 표정과 생활환경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모두가 같은 열차를 타고 같은 목적지를 향해 달리고 있지만, 어..
저도 처음엔 이 영화가 천재 수학자의 성공 스토리인 줄만 알았습니다. 실제로 보고 나서는 전혀 달랐습니다. 뷰티풀 마인드는 존 내시라는 실존 인물이 조현병(정신분열증)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터득하는 과정을 담은 작품입니다. 천재성보다 흔들리는 마음이 더 오래 남는 영화였습니다. 존 내시, 괴짜 천재의 내면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초반부에서 존 내시는 누구와도 쉽게 어울리지 못하는 인물로 등장합니다. 프린스턴대학교에 입학한 동료들이 수업과 논문, 취업을 이야기할 때 그는 혼자 창문에 수식을 적으며 세상을 설명할 단 하나의 독창적인 이론을 찾으려 합니다. 이미 다른 사람이 정리한 내용을 배우는 수업은 시간 낭비라고 여기고, 교수나 동료 앞에서도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드러냅니다. 상대방의 기분을 살피거나 적..
저도 처음엔 그냥 잘 만든 사극 한 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한참이 지나도 내경의 마지막 표정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더라고요. 얼굴을 보는 것과 사람을 아는 것이 과연 같은 일인가, 그 질문이 계속 따라다녔습니다. 첫인상보다 오래 남는 행동학창 시절 같은 조로 묶인 친구가 있었습니다. 말수가 적고 표정 변화도 거의 없어서 처음에는 가까이 다가가기 어려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질문을 해도 짧게 대답하는 편이었고, 여러 사람이 모인 자리에서도 먼저 대화를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의 저는 활발하게 웃고 편하게 말을 거는 사람이 친절하다고 생각했고, 조용한 사람에게는 자연스럽게 거리감을 느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상대를 제대로 알기도 전에 몇 가지 표정과 말투만으로 성격을 판단한 셈입니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면서도 이번에는 다를 거라고 믿은 적 있으신가요? 저는 그 질문의 답을 영화 한 편에서 발견했습니다. 2009년 개봉한 영화 트라이앵글은 단순한 공포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보고 나면 한참 동안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화면 속 공포보다 주인공의 선택이 더 무서웠습니다. 타임루프가 드러낸 진실영화 ‘트라이앵글’은 친구들과 요트 여행을 떠난 제스가 갑작스러운 폭풍을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뒤집힌 요트 위에서 구조를 기다리던 일행 앞에 거대한 유람선이 나타나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 정체를 알 수 없는 배에 올라탑니다. 여기까지만 보면 고립된 공간에서 살인마를 피해 살아남아야 하는 전형적인 서바이벌 스릴러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배 안에서 제스가 자신이 이미 겪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