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행동이 이상하다고 느낀 순간, 그게 정말 사실인지 한 번이라도 의심해 본 적 있으신가요. 저는 학창 시절 그 의심을 끝까지 밀고 나갔다가 소중한 친구를 잃을 뻔했습니다. 넷플릭스 영화 '프랙처드'는 그 경험이 떠오를 만큼, 사람의 기억과 인식이 얼마나 쉽게 무너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확증편향, 의심이 진실이 될 때영화 ‘프랙처드’는 한 남자가 병원에서 사라진 아내와 딸을 찾는 과정을 그린 심리 스릴러입니다. 주인공 레이는 휴게소에 들렀다가 딸 페리가 공사장 아래로 추락하는 사고를 겪습니다. 이후 아내 조앤과 함께 딸을 병원으로 데려가지만, 검사를 받으러 내려간 두 사람이 갑자기 사라집니다. 병원에서는 아내와 딸이 방문했다는 기록조차 없다고 말하고, 레이는 병원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감정을 말로 표현하지 않는 것이 성숙한 태도라고 믿었습니다. 말하지 않아도 상대가 알아주길 바라고, 침묵으로 마음을 전달할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그 믿음이 관계를 어떻게 망가뜨리는지는 직접 경험하고 나서야 겨우 알았습니다.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은 그 경험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만든 영화입니다. 침묵의 사랑이 남긴 오해영화 ‘헤어질 결심’을 처음 봤을 때 가장 인상적으로 다가온 것은 해준과 서래가 자신의 마음을 직접 설명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분명 서로에게 끌리지만 “사랑한다”는 말을 주고받는 대신 시선과 행동, 침묵으로 감정을 드러냅니다. 해준은 수사라는 명목으로 서래의 일상을 오래 바라보고, 서래는 그런 해준의 관찰을 알고도 그 시선에서 벗어나지 않습..
강한 사람이 외로움을 이겨내는 영화라고 생각하셨나요? 저도 처음엔 그렇게 봤습니다. 그런데 영화가 끝나고 나서 든 생각은 달랐습니다. 로버트 네빌은 강해서 버틴 게 아니라, 무너지지 않기 위해 오늘 할 일을 계속한 것뿐이었습니다. 그 모습이 어쩐지 낯설지 않았습니다. 고립이 무너뜨린 인간의 일상영화 ‘나는 전설이다’의 배경은 정체불명의 바이러스가 퍼진 뒤 대부분의 인류가 사라진 뉴욕입니다. 군인이자 과학자인 로버트 네빌은 바이러스에 면역을 지닌 채 도시에서 홀로 살아갑니다. 낮에는 식량과 필요한 물품을 구하고, 밤이 오기 전에는 감염자들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집으로 돌아옵니다. 겉으로 보면 그는 철저한 생존 규칙을 따르는 강인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네빌이 가장 힘겹게 싸우는 상대는 감염자..
조별 과제를 하다가 팀원들과 크게 부딪힌 경험, 한 번쯤은 있으실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그때 가장 힘들었던 건 서로 말이 통하지 않는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영화 교섭을 보면서 그 기억이 불쑥 떠올랐습니다. 생사가 걸린 협상 테이블에서도 결국 사람과 사람이 마주 앉아야 한다는 사실이, 생각보다 훨씬 크게 와닿았습니다. 협상 전략, 접점을 찾는 과정영화 ‘교섭’은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들이 무장단체에 납치되면서 시작됩니다. 납치 세력은 제한된 시간 안에 자신들의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인질을 살해하겠다고 위협하고, 외교부는 국민의 생명을 구하기 위한 협상에 돌입합니다. 영화는 총격전이나 추격 장면을 앞세우기보다, 협상 테이블 위에서 오가는 말과 선택에 집중합니다. 말 한마디와 정보 하나가 인질들의 생사..
지나간 시간을 되돌릴 수 없다는 사실은 누구나 압니다. 문제는 그걸 머리로는 알면서도 몸이 따라가지 않는다는 겁니다. 영화 '어바웃 타임'은 그 간극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저도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단순한 로맨스 영화라고 생각했다가 마지막 장면에서 멈칫했습니다. 시간의 가치, 과거를 바꿀 수 있어도 행복해질 수 없는 이유영화 '어바웃 타임'의 주인공 팀은 21살이 되던 해 아버지에게 가족의 비밀을 듣게 됩니다. 집안의 남자들에게는 자신의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는 것입니다. 처음 이 사실을 알게 된 팀은 누구라도 한 번쯤 상상해봤을 법한 방식으로 능력을 사용합니다. 마음에 드는 사람과의 관계를 바꾸고, 말실수를 고치고, 원하는 결과가 나올 때까지 같은 순간으로 돌아갑니다..
개봉 일주일 만에 수백만 관객을 끌어모은 영화 '파묘'. 처음 예고편을 봤을 때는 그냥 귀신 나오는 공포 영화겠거니 했는데, 막상 보고 나서는 생각이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땅속에 묻힌 것을 꺼내면서 감춰진 진실이 드러나는 이 영화가, 제가 중학교 때 묻어두었던 어떤 감정을 불현듯 건드렸기 때문입니다. 오컬트 장르에 한국 무속과 장례 문화를 결합한 방식영화 ‘파묘’는 ‘검은 사제들’과 ‘사바하’를 연출한 장재현 감독의 세 번째 장편 오컬트 영화입니다. 오컬트(Occult)란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초자연적 현상과 비밀스러운 믿음의 세계를 다루는 장르를 말합니다. 서양 오컬트 영화가 악마와 구마 의식, 기독교적 상징을 자주 활용한다면 ‘파묘’는 무당의 굿과 풍수지리, 묘지 이장, 장례 절차처럼 한국인에게..
예의 바른 사람이 더 위험에 취약하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저는 처음 이 질문을 마주했을 때 선뜻 수긍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스픽 노 이블'을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는 착한 사람이 왜 최악의 상황에 끌려 들어가는지를 섬뜩하리만치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상 신호를 무시하게 만드는 심리 구조이상 신호를 외면할수록 위험은 평범한 모습으로 다가온다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위험한 상황에 놓이면 본능적으로 이상함을 감지하고 즉시 자리를 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 ‘스픽 노 이블’은 현실에서 위험이 언제나 분명한 얼굴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노골적인 협박이나 폭력이 시작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이상 신호는 애매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상대가 지나치게 친근하게 다..
규정을 칼같이 지키면 정말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분명히 존재하는 업무인데 "우리 부서 일이 아닙니다"라는 말에 막혀버린 경험, 한 번쯤은 있지 않으십니까. 저는 그 답답함을 영화 한 편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4년작 터미널은 공항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제도의 빈틈에 갇혀버린 한 남자 이야기입니다. 출입국 규정이 한 사람을 공항에 가둔 이유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터미널’은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한 빅터 나보스키가 입국 심사대에서 제지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빅터는 동유럽의 가상 국가 크라코지아에서 미국으로 왔지만, 그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고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합니다. 기존 정부가 무너지면서 크라코지아가 국제적으로 정상적인 국..
직장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목소리 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진짜 위험한 건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경험이 떠오른 건 우디 앨런의 영화 '이레셔널 맨'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철학 교수 한 명이 살인을 통해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는 이야기인데, 황당하게 들리지만 현실에서 비슷한 구조를 꽤 자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자기합리화가 잘못된 판단을 옳은 선택처럼 바꾸는 과정영화 ‘이레셔널 맨’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얼마나 쉽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잘못된 행동을 하면 곧바로 죄책감을 느끼고, 스스로의 선택을 돌아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판단이 틀..
회의실에서 분명히 먼저 꺼낸 의견인데, 나중에 다른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자 그제야 분위기가 살아나는 걸 경험한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그 순간의 씁쓸함이 영화 '서프러제트'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1912년 런던 이야기인데도, 어딘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1912년 런던의 역사적 배경, 평범한 여성의 삶을 가둔 사회 구조영화 ‘서프러제트’의 배경은 1912년 영국 런던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은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지만, 그 발전의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돌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노동계층 여성들은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 환경, 불안정한 고용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모드 와츠 역시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로 등장합니다. 그는 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