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감 당일 예상치 못한 오류가 터졌을 때, 저도 처음엔 그냥 얼어붙었습니다. 손이 멈추고 머릿속이 하얘지는 그 느낌. 영화 '폴: 600미터'를 보다가 600m 타워 꼭대기에서 내려가는 사다리가 무너지는 장면을 보고 그 기억이 다시 떠올랐습니다. 극한의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살아남는지, 이 영화는 꽤 현실적으로 보여줍니다. 위기 대처 과정에서 드러난 침착함의 중요성영화 '폴: 600미터'는 높은 타워 위에 고립된 두 사람이 제한된 자원만으로 탈출구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 생존 스릴러입니다. 베키와 헌터는 사막 한가운데 세워진 방송용 타워에 올라갔다가 사다리가 무너지면서 지상으로 내려갈 방법을 잃게 됩니다. 그들이 서 있는 공간은 두 사람이 겨우 몸을 지탱할 수 있을 정도로 좁고, 주변에는 도움을 요청할..
갑자기 모든 게 멈춰버렸을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지시를 기다렸습니까, 아니면 일단 움직였습니까? 저는 그 선택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직장에서 뼈저리게 배웠고, 2006년 영화 포세이돈을 보면서 그 기억이 고스란히 떠올랐습니다. 재난 배경이 뒤집어 놓은 포세이돈호의 질서와 인간의 판단영화 ‘포세이돈’의 재난 배경은 12월 31일 밤, 새해를 앞두고 화려한 파티가 열리던 초호화 여객선에서 시작됩니다. 승객들은 음악과 음식, 공연을 즐기며 평범한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누구도 불과 몇 분 뒤 자신들이 타고 있는 거대한 배가 완전히 뒤집힐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파도가 선체를 덮치면서 포세이돈호는 균형을 잃고 전복됩니다.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연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
얼굴을 매일 보는 사람과 더 가까울까요, 아니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과 더 솔직할 수 있을까요? 저는 학창시절 이 질문의 답을 온몸으로 경험했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는 진짜 고민을 꺼내지 못했지만, 인터넷 메신저 너머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진로 걱정과 속마음을 술술 털어놓았습니다. 1998년 개봉한 영화 '유브 갓 메일'은 그 이상한 역설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익명성이 만들어낸 솔직한 대화와 감정의 연결일반적으로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여러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 ‘유브 갓 메일’을 보고 있으면 친밀감이 반드시 만남의 횟수나 함께한 시..
시험이 끝날 때마다 "다음엔 다르게 해야지" 했지만, 막상 다음 시험이 와도 똑같이 벼락치기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 찝찝한 기억을 안고 영화 트라이앵글을 봤는데, 화면 속 상황이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같은 선택이 같은 결말을 부른다는 이야기, 그런데 과연 그게 전부일까요. 타임루프가 드러내는 죄책감과 시간의 구조영화 ‘트라이앵글’은 제스가 친구들과 함께 요트 여행을 떠났다가 거센 폭풍을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요트가 뒤집힌 뒤 가까스로 살아남은 일행은 바다 위에 나타난 대형 유람선에 올라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위험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있어야 할 유람선 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합니다. 곳곳에서는 누군가가 지나간 흔적이 발견되고, 제스는 이 배에 이전..
가까운 사람의 잘못을 알게 됐을 때, 당신은 정말 원칙대로 행동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중요한 자료의 수치를 조작한 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제 첫 번째 반응은 "못 본 척하자"였습니다. 영화 보통의 가족은 바로 그 순간을 두 시간 내내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도덕적 판단, 가까운 사람 앞에서 기준이 흔들리는 이유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옳고 그름을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법을 어기면 책임을 져야 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줬다면 사과하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원칙에도 대부분 동의합니다. 하지만 영화 '보통의 가족'은 이런 도덕적 판단이 언제나 동일하게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건의 당사자가 낯선 사..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9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가 드디어 국내 개봉했습니다. 저도 극장에서 보고 나왔는데, 차를 몰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이상하게 무거웠습니다. 그냥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고용불안, 평생직장이라는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불안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면, 저는 업무가 가장 많았을 때보다 조직 개편이나 인력 조정 이야기가 들릴 때가 더 힘들었습니다. 당장 해고 통보를 받은 것도 아닌데 괜히 주변 분위기를 살피게 되고, 상사의 말투나 회의 내용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됐습니다. 담당 업무가 갑자기 바뀌거나 기존 인력이 다른 부서로 이동하면 혹시 다음 순서가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겉으로는..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역경을 극복한 사람은 원래 강한 사람이어서 버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스트롱거는 2017년에 개봉한 실화 기반 드라마로,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에서 두 다리를 잃은 제프 바우먼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감동 실화물이겠거니 했는데, 보고 나서 제 직장 시절 기억이 생각지도 않게 떠올랐습니다. 영웅 신화, 사회가 만들어낸 회복의 이미지일반적으로 큰 사고나 재난을 극복한 사람은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시련을 이겨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언론은 그들을 '기적의 생존자', '영웅', '희망의 상징'이라는 표현으로 소개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보며 감동을 받습니다. 물론 이러한 응원과 존경은 선한 의도에서 비..
서로의 입장을 모른 채 부딪히기만 하면 어떻게 될까요. 영화 '남편들'을 보는 내내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전혀 다른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 한 공간에 엮이면서 생기는 갈등과 그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이, 제가 직장 초반에 겪었던 협업의 어려움과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직장갈등, 누가 틀렸기보다 서로 다른 기준에서 시작됩니다영화 '남편들'에서 흥미롭게 느껴졌던 부분은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들이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전직 조폭 보스 김용강, 마약 유통 조직을 이끄는 마도준, 마약반 형사 황충식은 각자 다른 목적과 기준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가족과 조직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고, 누군가는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들은 같은 상..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 당신이 손을 내민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영화 '프로젝트 Y'는 화류계를 배경으로 두 여자가 살아남기 위해 범죄에 발을 들이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었는데, 그 이유가 단순히 스릴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이 지나치게 낯설지 않아서였습니다. 승부조작, 숫자 하나로 사람의 인생을 흔드는 구조영화 ‘프로젝트 Y’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범죄 장치는 승부조작입니다. 승부조작이란 스포츠 경기의 결과나 특정 상황을 사전에 정해놓고, 그 정보를 이용해 불법 베팅 시장에서 이익을 얻는 행위를 말합니다. 단순히 선수가 일부러 경기에서 지는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경기 결과를 설계하는 사람, 선수를 회유하거나 협박하는 사람, 조작 정보를 판..
행복을 손에 쥐고도 스스로 놓아버린 사람을 본 적 있으신가요. 영화 '행복'은 그 질문을 정면으로 던집니다. 간경변 판정을 받고 요양원에서 삶을 되찾은 남자가, 건강을 회복한 순간 오히려 그 행복을 포기하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단순한 멜로라고 생각했는데, 다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게 있었습니다. 병든 관계, 몸이 아플 때 비로소 보이는 사람들영화 '행복'의 주인공 영수는 서울에서 클럽을 운영하며 술과 담배에 의존해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겉으로는 자유롭고 화려한 삶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소모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는 간경변 진단을 받고 도시를 떠나 시골에 있는 요양원 '희망의 집'으로 향합니다. 간경변은 오랜 기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