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까운 사람의 잘못을 알게 됐을 때, 당신은 정말 원칙대로 행동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중요한 자료의 수치를 조작한 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제 첫 번째 반응은 "못 본 척하자"였습니다. 영화 보통의 가족은 바로 그 순간을 두 시간 내내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도덕적 판단, 가까운 사람 앞에서 기준이 흔들리는 이유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옳고 그름을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법을 어기면 책임을 져야 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줬다면 사과하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원칙에도 대부분 동의합니다. 하지만 영화 '보통의 가족'은 이런 도덕적 판단이 언제나 동일하게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건의 당사자가 낯선 사..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9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가 드디어 국내 개봉했습니다. 저도 극장에서 보고 나왔는데, 차를 몰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이상하게 무거웠습니다. 그냥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고용불안, 평생직장이라는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불안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면, 저는 업무가 가장 많았을 때보다 조직 개편이나 인력 조정 이야기가 들릴 때가 더 힘들었습니다. 당장 해고 통보를 받은 것도 아닌데 괜히 주변 분위기를 살피게 되고, 상사의 말투나 회의 내용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됐습니다. 담당 업무가 갑자기 바뀌거나 기존 인력이 다른 부서로 이동하면 혹시 다음 순서가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겉으로는..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역경을 극복한 사람은 원래 강한 사람이어서 버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스트롱거는 2017년에 개봉한 실화 기반 드라마로,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에서 두 다리를 잃은 제프 바우먼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감동 실화물이겠거니 했는데, 보고 나서 제 직장 시절 기억이 생각지도 않게 떠올랐습니다. 영웅 신화, 사회가 만들어낸 회복의 이미지일반적으로 큰 사고나 재난을 극복한 사람은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시련을 이겨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언론은 그들을 '기적의 생존자', '영웅', '희망의 상징'이라는 표현으로 소개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보며 감동을 받습니다. 물론 이러한 응원과 존경은 선한 의도에서 비..
저도 처음엔 기억이 틀렸다는 사실보다, 여러 사람이 똑같이 틀렸다는 사실에 더 당황했습니다. 영화 '만델라 이펙트'는 그 감각을 정면으로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기억이 얼마나 쉽게 왜곡되는지, 그리고 우리가 확신하는 기억이 사실과 얼마나 다를 수 있는지를 돌아보게 만드는 이야기입니다. 집단기억왜곡, 여러 사람이 같은 내용을 기억해도 사실이 아닐 수 있다영화 ‘만델라 이펙트’를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직장생활 중 겪었던 한 회의였습니다. 당시 저를 포함한 여러 팀원이 특정 업무 방향이 이미 확정됐다고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각자 그 기준에 맞춰 자료를 준비했고, 다음 일정도 자연스럽게 그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며칠 뒤 열린 후속 회의에서 담당자는 그런 결정이 내려진 적이..
회의실에서 분명히 먼저 꺼낸 의견인데, 나중에 다른 사람이 똑같은 말을 하자 그제야 분위기가 살아나는 걸 경험한 적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그 순간의 씁쓸함이 영화 '서프러제트'를 보는 내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1912년 런던 이야기인데도, 어딘가 낯설지 않았습니다. 1912년 런던의 역사적 배경, 평범한 여성의 삶을 가둔 사회 구조영화 ‘서프러제트’의 배경은 1912년 영국 런던입니다. 산업혁명 이후 영국은 세계적인 경제 강국으로 성장했지만, 그 발전의 혜택이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돌아간 것은 아니었습니다. 특히 노동계층 여성들은 낮은 임금과 열악한 근무 환경, 불안정한 고용에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영화의 주인공 모드 와츠 역시 세탁 공장에서 일하는 평범한 노동자로 등장합니다. 그는 어..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기 전까지는 그냥 미식축구 영화겠거니 했는데, 다 보고 나서 한동안 직장생활 초기 기억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습니다. 인종 통합이라는 극단적인 갈등 상황을 배경으로, 결국 팀이 어떻게 하나가 되는지를 담담하게 보여주는 이 영화는 조직 내 신뢰와 협업의 본질을 건드립니다. 팀워크는 잘 맞는 사람보다 서로 다른 사람을 연결할 때 만들어집니다영화 '리멤버 타이탄'을 보면서 가장 현실적으로 느껴졌던 부분은 팀워크가 처음부터 아름다운 모습으로 시작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영화 속 미식축구팀은 흑인 학교와 백인 학교가 통합되면서 만들어집니다. 선수들은 같은 유니폼을 입고 같은 경기장에 모였지만, 서로를 동료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피부색과 성장 환경이 다르다는 이유로 ..
서로의 입장을 모른 채 부딪히기만 하면 어떻게 될까요. 영화 '남편들'을 보는 내내 그 질문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전혀 다른 세계에 살던 사람들이 한 공간에 엮이면서 생기는 갈등과 그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이, 제가 직장 초반에 겪었던 협업의 어려움과 묘하게 겹쳐 보였습니다. 직장갈등, 누가 틀렸기보다 서로 다른 기준에서 시작됩니다영화 '남편들'에서 흥미롭게 느껴졌던 부분은 갈등을 일으키는 인물들이 단순히 선과 악으로 나뉘지 않는다는 점이었습니다. 전직 조폭 보스 김용강, 마약 유통 조직을 이끄는 마도준, 마약반 형사 황충식은 각자 다른 목적과 기준을 가지고 움직입니다. 누군가는 자신의 가족과 조직을 지키기 위해 행동하고, 누군가는 사건을 해결해야 한다는 책임감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들은 같은 상..
막다른 곳에 몰렸을 때, 당신이 손을 내민 사람은 누구였습니까? 영화 '프로젝트 Y'는 화류계를 배경으로 두 여자가 살아남기 위해 범죄에 발을 들이는 이야기입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는 내내 손에 땀을 쥐었는데, 그 이유가 단순히 스릴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주인공들이 처한 상황이 지나치게 낯설지 않아서였습니다. 승부조작, 숫자 하나로 사람의 인생을 흔드는 구조영화 ‘프로젝트 Y’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범죄 장치는 승부조작입니다. 승부조작이란 스포츠 경기의 결과나 특정 상황을 사전에 정해놓고, 그 정보를 이용해 불법 베팅 시장에서 이익을 얻는 행위를 말합니다. 단순히 선수가 일부러 경기에서 지는 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경기 결과를 설계하는 사람, 선수를 회유하거나 협박하는 사람, 조작 정보를 판..
행복을 손에 쥐고도 스스로 놓아버린 사람을 본 적 있으신가요. 영화 '행복'은 그 질문을 정면으로 던집니다. 간경변 판정을 받고 요양원에서 삶을 되찾은 남자가, 건강을 회복한 순간 오히려 그 행복을 포기하는 이야기입니다. 처음 이 영화를 봤을 때 저는 단순한 멜로라고 생각했는데, 다 보고 나서 한참을 멍하게 있었습니다. 병든 관계, 몸이 아플 때 비로소 보이는 사람들영화 '행복'의 주인공 영수는 서울에서 클럽을 운영하며 술과 담배에 의존해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겉으로는 자유롭고 화려한 삶을 즐기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몸과 마음을 제대로 돌보지 못한 채 하루하루를 소모하고 있습니다. 결국 그는 간경변 진단을 받고 도시를 떠나 시골에 있는 요양원 '희망의 집'으로 향합니다. 간경변은 오랜 기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당했다는 사실을 가장 늦게 아는 경우가 있습니다. 저도 직장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믿었던 동료가 중요한 정보를 공유하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을 때 처음엔 그냥 실수려니 했습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순간, 그건 단순한 실수가 아니었습니다. 영화 랜덤 하트는 바로 그 감각, 내가 몰랐던 진실이 세상에 먼저 존재했다는 그 감각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배신과 상실, 한순간에 두 개의 현실을 받아들여야 했던 사람들영화 ‘랜덤 하트’는 비행기 추락 사고로 배우자를 잃은 두 사람이 뒤늦게 배우자의 외도 사실까지 알게 되면서 시작됩니다. 일반적인 사별 영화가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슬픔에 집중한다면, 이 작품은 상실과 배신이 동시에 발생했을 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