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자기 모든 게 멈춰버렸을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지시를 기다렸습니까, 아니면 일단 움직였습니까? 저는 그 선택이 얼마나 큰 차이를 만드는지 직장에서 뼈저리게 배웠고, 2006년 영화 포세이돈을 보면서 그 기억이 고스란히 떠올랐습니다. 재난 배경이 뒤집어 놓은 포세이돈호의 질서와 인간의 판단영화 ‘포세이돈’의 재난 배경은 12월 31일 밤, 새해를 앞두고 화려한 파티가 열리던 초호화 여객선에서 시작됩니다. 승객들은 음악과 음식, 공연을 즐기며 평범한 연말을 보내고 있습니다. 누구도 불과 몇 분 뒤 자신들이 타고 있는 거대한 배가 완전히 뒤집힐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갑자기 나타난 거대한 파도가 선체를 덮치면서 포세이돈호는 균형을 잃고 전복됩니다. 즐거움으로 가득했던 연회장은 순식간에 아수라..
예의 바른 사람이 더 위험에 취약하다면 믿으시겠습니까? 저는 처음 이 질문을 마주했을 때 선뜻 수긍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영화 '스픽 노 이블'을 보고 나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영화는 착한 사람이 왜 최악의 상황에 끌려 들어가는지를 섬뜩하리만치 설득력 있게 보여줍니다. 이상 신호를 무시하게 만드는 심리 구조이상 신호를 외면할수록 위험은 평범한 모습으로 다가온다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위험한 상황에 놓이면 본능적으로 이상함을 감지하고 즉시 자리를 피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영화 ‘스픽 노 이블’은 현실에서 위험이 언제나 분명한 얼굴로 등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을 보여줍니다. 노골적인 협박이나 폭력이 시작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이상 신호는 애매한 형태로 나타납니다. 상대가 지나치게 친근하게 다..
규정을 칼같이 지키면 정말 모든 문제가 해결될까요? 직장 생활을 하다 보면 분명히 존재하는 업무인데 "우리 부서 일이 아닙니다"라는 말에 막혀버린 경험, 한 번쯤은 있지 않으십니까. 저는 그 답답함을 영화 한 편에서 다시 만났습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2004년작 터미널은 공항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제도의 빈틈에 갇혀버린 한 남자 이야기입니다. 출입국 규정이 한 사람을 공항에 가둔 이유톰 행크스 주연의 영화 ‘터미널’은 뉴욕 존 F. 케네디 국제공항에 도착한 빅터 나보스키가 입국 심사대에서 제지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빅터는 동유럽의 가상 국가 크라코지아에서 미국으로 왔지만, 그가 비행기를 타고 이동하는 동안 고국에서 쿠데타가 발생합니다. 기존 정부가 무너지면서 크라코지아가 국제적으로 정상적인 국..
확인되지 않은 소문 하나가 공동체 전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는 사실, 저는 직접 경험하기 전까지는 실감하지 못했습니다. 영화 누룩은 바로 그 지점을 정확하게 건드리는 작품입니다. 18세 소녀가 누룩을 찾아 헤매는 이야기가 어떻게 공동체의 심리 구조를 해부하는 영화로 이어지는지, 제 경험과 함께 짚어봤습니다. 집단심리가 만들어낸 다슬에 대한 오해영화 '누룩'은 양조장집 딸 다슬이 아버지가 만든 전통 누룩 막걸리에 강한 애착을 보이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겉으로만 보면 고등학생이 막걸리를 지나치게 좋아하는 독특한 설정처럼 보이지만,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다슬의 행동에는 단순한 음주 습관만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이유가 숨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납니다. 영화는 이러한 상황을 이용해 한 사람의 행동이 주변의 시선과 집단..
직장에서 가장 무서운 사람은 목소리 큰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직접 겪어보니, 진짜 위험한 건 자신의 판단을 의심하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경험이 떠오른 건 우디 앨런의 영화 '이레셔널 맨'을 보고 나서였습니다. 철학 교수 한 명이 살인을 통해 삶의 의욕을 되찾는다는 이야기인데, 황당하게 들리지만 현실에서 비슷한 구조를 꽤 자주 목격했기 때문입니다. 자기합리화가 잘못된 판단을 옳은 선택처럼 바꾸는 과정영화 ‘이레셔널 맨’을 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얼마나 쉽게 정당화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이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잘못된 행동을 하면 곧바로 죄책감을 느끼고, 스스로의 선택을 돌아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실제로는 정반대의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판단이 틀..
얼굴을 매일 보는 사람과 더 가까울까요, 아니면 한 번도 본 적 없는 사람과 더 솔직할 수 있을까요? 저는 학창시절 이 질문의 답을 온몸으로 경험했습니다. 같은 반 친구들에게는 진짜 고민을 꺼내지 못했지만, 인터넷 메신저 너머 모르는 누군가에게는 진로 걱정과 속마음을 술술 털어놓았습니다. 1998년 개봉한 영화 '유브 갓 메일'은 그 이상한 역설을 정면으로 다룹니다. 익명성이 만들어낸 솔직한 대화와 감정의 연결일반적으로 사람과 가까워지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얼굴을 마주하고, 함께 여러 경험을 쌓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상대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보고 서로에게 익숙해지는 과정이 있어야 비로소 마음을 열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영화 ‘유브 갓 메일’을 보고 있으면 친밀감이 반드시 만남의 횟수나 함께한 시..
시험이 끝날 때마다 "다음엔 다르게 해야지" 했지만, 막상 다음 시험이 와도 똑같이 벼락치기를 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 적 있으신가요. 저도 그랬습니다. 그 찝찝한 기억을 안고 영화 트라이앵글을 봤는데, 화면 속 상황이 낯설지가 않았습니다. 같은 선택이 같은 결말을 부른다는 이야기, 그런데 과연 그게 전부일까요. 타임루프가 드러내는 죄책감과 시간의 구조영화 ‘트라이앵글’은 제스가 친구들과 함께 요트 여행을 떠났다가 거센 폭풍을 만나면서 시작됩니다. 요트가 뒤집힌 뒤 가까스로 살아남은 일행은 바다 위에 나타난 대형 유람선에 올라탑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위험에서 벗어난 것처럼 보이지만, 사람이 있어야 할 유람선 안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합니다. 곳곳에서는 누군가가 지나간 흔적이 발견되고, 제스는 이 배에 이전..
가까운 사람의 잘못을 알게 됐을 때, 당신은 정말 원칙대로 행동할 수 있습니까? 저는 그럴 수 없었습니다. 직장에서 친하게 지내던 동료가 중요한 자료의 수치를 조작한 뒤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려는 모습을 목격했을 때, 제 첫 번째 반응은 "못 본 척하자"였습니다. 영화 보통의 가족은 바로 그 순간을 두 시간 내내 정면으로 응시합니다. 도덕적 판단, 가까운 사람 앞에서 기준이 흔들리는 이유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옳고 그름을 비교적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법을 어기면 책임을 져야 하고, 타인에게 피해를 줬다면 사과하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원칙에도 대부분 동의합니다. 하지만 영화 '보통의 가족'은 이런 도덕적 판단이 언제나 동일하게 작동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사건의 당사자가 낯선 사..
베니스 국제 영화제에서 9분간의 기립박수를 받은 박찬욱 감독의 신작 '어쩔 수가 없다'가 드디어 국내 개봉했습니다. 저도 극장에서 보고 나왔는데, 차를 몰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마음이 이상하게 무거웠습니다. 그냥 영화 한 편을 본 기분이 아니었습니다. 고용불안, 평생직장이라는 믿음이 무너지는 순간직장생활을 하면서 가장 불안했던 순간이 언제였는지 떠올려 보면, 저는 업무가 가장 많았을 때보다 조직 개편이나 인력 조정 이야기가 들릴 때가 더 힘들었습니다. 당장 해고 통보를 받은 것도 아닌데 괜히 주변 분위기를 살피게 되고, 상사의 말투나 회의 내용 하나에도 의미를 부여하게 됐습니다. 담당 업무가 갑자기 바뀌거나 기존 인력이 다른 부서로 이동하면 혹시 다음 순서가 내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겉으로는..
솔직히 저는 이 영화를 보기 전까지 '역경을 극복한 사람은 원래 강한 사람이어서 버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 스트롱거는 2017년에 개봉한 실화 기반 드라마로, 2013년 보스턴 마라톤 폭탄 테러에서 두 다리를 잃은 제프 바우먼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냥 감동 실화물이겠거니 했는데, 보고 나서 제 직장 시절 기억이 생각지도 않게 떠올랐습니다. 영웅 신화, 사회가 만들어낸 회복의 이미지일반적으로 큰 사고나 재난을 극복한 사람은 누구보다 강한 의지를 가진 사람이기 때문에 시련을 이겨냈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언론은 그들을 '기적의 생존자', '영웅', '희망의 상징'이라는 표현으로 소개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런 이야기를 보며 감동을 받습니다. 물론 이러한 응원과 존경은 선한 의도에서 비..